대구주례협회 김병준(66) 사무장은 '주례의 달인'이다. 주례 경력 13년차인 그가 지금까지 주례를 본 결혼식은 500건이 넘는다. 최근 은사(恩師)나 직장상사 대신 '주례 전문가'를 찾는 신혼부부들이 늘면서 김 씨는 주말마다 대구시내 예식장 곳곳을 뛰어다니고 있다. 김 사무장은 '5월 가정의 달'엔 더 바쁘게 결혼식장을 다녔다.
◆눈높이 맞춤형 주례
김 씨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례 원칙은 '최대한 짧게'다. 교장 선생님 훈화처럼 길게 늘어놓는 주례는 신랑'신부와 하객 모두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리 좋은 이야기도 오랫동안 듣고 있으면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한 시간 안에 사진 촬영과 예식을 끝내야 하는 결혼식에서 주례는 5분 안에 끝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했다. 그래서 요즘 결혼식장에는 '맞춤식 주례'가 인기다. 짧은 가운데 핵심만 콕콕 찍어내는 '맞춤식 주례'를 위해 결혼 전 고객들의 의견을 미리 받는다. "협회에 들어오는 주례 의뢰 건수가 한 달에 40건 정도 되는데 그 중 20%가 직접 작성한 원고를 이메일로 보내와요. 원고를 보면서 예비 부부들과 전화로 상의한 뒤 어떤 내용으로 주례를 할지 방향을 잡습니다."
김 씨는 요즘 신혼부부들이 주례협회를 찾는 이유로 편리성과 비교적 저렴한 가격을 들었다. "주례를 지인에게 부탁하면 양복 한 벌 해드려야 하고, 신혼여행 갔다 와서 선물도 사다 드려야 해 번거롭다는 의견이 많아요. 주례협회에 신청하면 10만원에 맞춤식으로 해결해주니까 저렴하다는 평이 많더군요."
신랑'신부를 결혼식 당일 처음 보고 곧바로 주례를 해야하기 때문에 노하우도 생겼다. 결혼식 1시간 전 예식장에 미리 가 신랑'신부와 대화하며 손을 잡고 얼굴을 익힌다. 예비 부부의 긴장을 풀어주고, 처음 본 사이라는 것이 드러나지 않게 자연스럽게 주례를 하기 위해서다. 주례 금기어도 있다. 배우자의 학력이나 특정 종교와 관련된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상대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
"만약 신부가 신랑보다 학력이 낮은데 출신 학교 이야기를 한다면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수 있잖아요.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에는 신랑신부의 장점만 언급하는 것이 좋습니다."
◆좋은 주례는 자기계발에서
김 씨는 한 달에 평균 10건 정도 주례석에 선다. 결혼의 달인 5월이나 결혼 성수기인 가을철엔 한 달에 16번이나 주례를 본 적도 있다. 수많은 신혼부부들의 주례를 서다 보니 웃지 못할 해프닝도 종종 생긴다.
"얼마 전 한 결혼식장에 주례를 보러 갔다가 한 달 전에 주례를 봤던 신혼부부가 와 있어서 반갑게 인사를 했어요. 알고 보니 그날 결혼식 하객으로 왔다고 하더군요."
그는 2002년 '전문 주례사'의 길을 처음으로 걸었다. 당시 보건복지부에서 실시한 '노인 전문주례 양성과정'에 참여해 혼례 이론과 전통예절, 주례사 작성법 등을 교육받았다. 이후 소일삼아 지인들의 결혼식 주례를 봐주던 것이 새로운 직업이 됐다.
김 씨는 좋은 주례사를 위해 자기계발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틈만 나면 메모하는 습관도 이때 생겼다. "좋은 주례사를 만들기 위해 책을 많이 읽어요. 좋은 글귀가 보이면 항상 메모해 뒀다가 써먹습니다. '부부는 두 물방울이 하나가 되는 과정'이라는 멘트도 이렇게 탄생했어요. 좋지 않나요?"
김 씨는 주례를 서면서 얻는 게 더 많다고 했다. "신랑'신부에게 덕담을 하고 나면 제 기분도 좋아집니다. 주례는 훈계가 아니라 '앞으로 잘 살아보라'는 덕담이니까요."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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