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깊은생각 열린 교육] 객관식은 없다

내년부터 미국에서는 학교 시험에 객관식 문제를 모두 없앤다고 한다. 단순하게 암기한 지식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 사고력을 평가하겠다는 의미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서술형 평가를 강화하겠다고 한다. 국어나 사회와 같은 인문 과목은 수학이나 과학과 달리 과목 성격상 정답이 없는 학문이다. 국어와 사회 과목은 애초부터 객관식 문제가 필요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실 풍경을 보면 그렇지 못하다. 예를 들면 사형제도에 관한 내용을 가르치고 이렇게 평가한다.

다음 중 사형제도가 실질적으로 폐지된 나라는?

① 미국 ② 일본 ③ 캐나다 ④ 중국 ⑤ 스위스

이런 유형의 문제는 단지 외워서 정답을 찾아내기를 요구하는 평가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그저 시험 문제와 관련된 지식만 반복해서 암기한다.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수십 개의 비슷한 문제를 푼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키울 필요가 없다. 결국 생각하지 않는 단순화된 두뇌들만 양산하고, 거기에다 조급증과 망각증까지 덤으로 얻게 되었다.

사형제도가 폐지된 나라를 기억하기보다는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할까''그대로 두는 것이 바람직할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은 암기로 해결할 수 없다.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할까?''사형제도를 그대로 두는 것이 바람직할까?' 자신의 생각을 쓰도록 해야 한다. 수업도 토론, 발표식으로 해야 하고, 평가도 논술형으로 해야 한다. 그것이 그 주제에 맞는 수업이며, 핵심역량을 기를 수 있는 평가이다.

거기에서 나아가 '자신의 생각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태어난 것인지, 아니면 주변에서 들은 정보를 근거로 하고 있는지, 근거를 뒷받침하는 사례가 정당한지'를 따져보도록 해야 한다. 따져보기를 통해 주장의 근거나 사례가 잘못된 것이라면 자신의 주장을 바꿀 수도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아집으로 흐르지 않고 제대로 된 자신의 생각을 가진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 자신의 생각을 가져야 진심어린 눈으로 사물과 현상을 볼 수 있다. 피해자 가족을 만나본 사람은 사형제도의 옹호론자가 될 것이다. 반대로 사형 집행자의 고충을 이해하면 사형제도 폐지론자가 될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제대로 지도자를 뽑을 수 있고, 제대로 된 사회도 만들 수 있다. 학급에서 반장을 뽑을 때도 어느 후보를 뽑아야 우리 반을 위해 진정으로 노력할 것인지 꼼꼼히 따져보고 투표할 수 있다. 자기 생각 없이 그저 분위기에 휩쓸려 찍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성인이 되어 시장을 뽑든, 국회의원을 뽑든, 대통령을 뽑든 정말 우리 공동체를 위해 노력하는 올바른 지도자를 뽑을 수 있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21세기형 민주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홍세화의 '생각의 좌표'라는 책을 보면 학생들이 쓰지 않기 때문에 생각할 필요가 없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읽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쓰기 교육을 강화하면 사고력 교육, 읽기 교육이 된다는 것이다. 그 출발점에 객관식 시험에 대한 논쟁이 위치하고 있다.

한원경(대구시교육청 교육과정운영과 장학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