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승부 조작 사태가 선수 자살 등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승부 조작이 '승패'뿐 아니라 '경기 내용'에까지 영향을 미쳐 '재미없는 축구를 만들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검찰 조사에서 현재까지 승부 조작이 시도된 경기는 컵 대회 2경기로 밝혀졌지만 올 시즌 정규리그 경기력도 예년만 못하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흘러나오면서 정규리그에까지 승부 조작이 만연된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조심스레 흘러나오고 있는 것. 이는 컵 대회 승부 조작 사태로 코칭스태프-선수, 선수-선수, 팬 사이에 믿음이 깨지면서 모든 상황에 대해 '불신'이 커졌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지역 축구계 한 관계자는 "올 시즌 정규리그 수준이 '하향평준화'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정규리그에까지 승부 조작이 개입되면서 경기력을 저하시키고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최강희 전북 현대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지난 4월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6대2로 대승을 거둔 것도 '승부조작 아니냐'는 얘기를 들었다. 정상적으로 치른 경기를 두고도 이런 의혹이 한도 끝도 없이 나온다"며 "크게 져도, 크게 이겨도 누군가는 색안경을 끼고 볼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에 대해 승부 조작보다는 올 시즌 '전술이 실종된' 경기력에서 원인을 찾는 분석도 있다. 이기기 위해 수비와 미드필더를 강화, 뒷문을 걸어 잠그는 수비 중심의 경기를 하는 팀이 많아진데다 이를 깨기 위한 전술을 구사하는 팀은 찾아보기 어려워 '뻥' 축구, '걷어내기에 급급한' 축구가 올 시즌 대세로 자리 잡았다는 것. 프로축구단의 한 관계자는 "승부 조작이 없다고 단언할 순 없지만 전술적인 영향이 큰 것 같다"며 "극단적인 수비 위주로 경기를 하다 보니 슈팅이나 득점이 적고, 승패가 갈리지 않는 경기가 많은 등 강팀과 약팀의 경계가 무너진 것 같다"고 진단했다.
실제 올 시즌 정규리그 12라운드까지 16개 팀의 총 득점은 234점, 슈팅 수 2천16개로, 지난 시즌 12라운드(15개 팀) 득점 262점, 슈팅 2천361개보다 적다. 반면 올 시즌 같은 기간 무승부와 파울은 각각 50번, 3천310개로, 지난해 42번, 3천199개보다 많았다. 승점도 12라운드 현재 무려 10개 팀이 '승점 5' 내 접전 중인 등 강팀도 약팀도 없는 상황에서 서로 물고 물리는 '혼전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수비 중심이 아닌 공격 축구를 구사하는 팀은 전북 현대, 포항 스틸러스, FC서울 등 일부만 언급될 정도다.
석광재 대구FC 사무국장은 "올 시즌 정규리그의 박진감이 다소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승부 조작 때문이 아니라 많은 팀이 실리축구를 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승부가 조작됐다면 더 많은 골이 터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며 "수비축구라기보다는 각 팀, 특히 약팀들이 팀 전력을 현실적으로 파악, 이기기 위해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고 상대 분석, 맞춤형 전술 등으로 '팀에 맞는' 실리축구를 하다 보니 수비 중심의 경기를 하게 되고, 전통적인 강팀들은 이를 깨지 못하면서 전반적으로 경기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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