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남편 또는 아내로부터 편안해지는 법

소노 아야코 지음/오근영 옮김/리수 펴냄

이혼하거나 일찍 사별하지 않는다면 대체로 부부는 40년 이상 함께 산다. 부모와 자식도 일정시기가 되면 헤어지는 것을 고려할 때 세상에서 가장 깊은 관계를 맺고, 가장 오랫동안 함께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랜 세월 사는 동안 부부는 혈연과 같은 관계에 이르게 된다. 그럼에도 부부는 여전히 타인이며, 증오의 대상, 상실감의 대상, 혹은 타인보다 더 나쁜 대상이 되기도 한다. 부부의 생활이 행복하면 인생이 신뢰할 만한 것처럼 여겨지고, 상대를 미워하거나 증오하면 세상이 온통 회의로 가득 찬 곳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지은이 소노 아야코는 '결혼은 애초에 불합리한 관계설정'임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결혼이란 아직 세상에 대한, 혹은 사람에 대한 안목이 없기 때문에 성사되고, 따라서 이는 인생의 절묘한 함정이라고 규정한다. 안목이 없다는 말은 사람 보는 눈이 어둡다는 의미 이상이다. 출생도 성장과정도 취향도 전혀 다른 사람과 함께 살려는 생각 자체가 무모하다는 것이다.

인물, 재력, 건강, 됨됨이 등 여러 가지 조건을 살펴서 결혼했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매력적으로 보였던 것들은 살아가는 동안 사소하게 여겨지기 일쑤다. 이것은 꼭 상대방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변화에도 커다란 원인이 있다.

이 책은 부부간의 서로 다른 기대치, 잣대, 안목, 취향, 돈, 성, 아픈 배우자, 비밀, 대화, 배우자의 부모 또는 형제, 자식 등 결혼생활에 수반되기 마련인 24가지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간다. 각 항목에 대한 지은이의 분석은 날카롭다.

돈은 결혼생활을 원만하게 유지할 수 있는 절대적 요인은 못 되지만, 파국을 야기하는 절대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 성문제는 결혼생활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만약 결혼제도의 최대 요소가 성욕을 채우는 것이라면, 굳이 결혼이라는 형태를 취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매춘부를 상대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결혼생활에서 성은 정신적인 부분까지 포함한다. 부부간의 정신적인 부분까지 일치하지 못한다면 탄탄한 유대나 공동생활은 어렵다.

결혼에 임한 남녀는 이렇다 할 검증과정도 신앙심도 갖지 않은 채 '흰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사랑'을 맹세한다. 그러나 파국은 의외로 빨리 찾아온다. '바람'이 좋은 예다. '바람'은 진심이 아니다. 반은 장난처럼 행하는 행위일 수 있고, 놀이공원의 모험여행 같은 것이다. 그러나 결혼제도는 '바람'을 용납하지 않는다. 자신에게는 장난인 '바람'이 상대에게는 치명적인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저지르는 최대의 착오는 배우자의 성격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다. 배우자의 성격은 절대로 바꿀 수 없다. 만약 변한다면 나이를 먹으면서, 혹은 몇 가지 중대한 체험을 통해서 스스로 변하는 경우뿐이다.

지은이는 "사이가 진실로 나쁜 부부, 성격이 맞지 않는 부부는 한시라도 빨리 이혼하는 게 낫다. 그러나 이혼은 가정에서 한 사람을 떼어내는 것이며, 따라서 이혼은 외톨이가 된다는 것, 죽을 때도 혼자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혼이 함정이듯 이혼 역시 함정이라는 말이다.

책은 그 고독을 알고도 '이 지겨운 인간과 함께 살기 싫다'고 확신할 때는 이혼이라는 대사업을 감행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세상모르고 결혼했듯이 많은 부부들은 이혼 후 잃게 될 경제적, 사회적 이익을 생각해 꾸역꾸역 살아간다.

이 책은 '결혼은 애초에 불합리한 것이며, 인생의 함정이다. 함정인줄 몰랐다고 해도 도리 없다. 일단 결혼했다면 이 모든 불합리를 감내하며 살아라, 그래야 편하다. 그러나 도저히 못 참겠다 싶을 때는 이혼하고 고독한 생활로 돌아가라, 그래야 편하다'고 말한다. 지은이 소노 아야코는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라는 책으로 국내 중년 독자들에게 알려진 일본 도쿄 출생의 여류 소설가다. 238쪽, 1만2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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