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출향인사] "과감한 변화·소통 구조 키워야" 구임식 대우건설 전무

기자의 지각 때문에 인터뷰가 늦어졌지만 구임식(58) 대우건설 전무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밝았다. 갑자기 '소금이 영어로 뭔지 아느냐'고 물었다. '솔트(salt) 아니냐'고 대답하니, 이번엔 굵은 소금을 물어왔다.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대문자 솔트입니다"라며 펜으로 굵직하게 적어 보였다. 'SALT!' 한바탕 크게 웃고 나니 지각에 대한 미안함도 사그라졌다. 구 전무는 그런 방식으로 상대를 배려했다.

그의 얼굴은 항상 밝다. 골프를 칠 때나 식사를 하거나, 그 어느 순간에도 그늘진 곳이라곤 좀처럼 찾아 볼 수 없다. 처음엔 '국내 굴지의 건설사 임원으로서의 안정감 때문이겠거니'라고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그의 회사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것을 이겨낸 승자의 여유 같은 것이었다.

30년 전 기술직으로 대우건설에 입사할 때만 해도 학벌을 중시하던 회사에선 '프롤레타리아 그룹'이었단다. 김우중 전 회장의 모교인 경기고, 연세대 출신도 아니었고 지연도 전혀 없었다. 이 때문에 차장 승진까지 동기들보다 수년 뒤처졌다. 기술직이란 한계 때문에 위험천만한 건설 현장만 전전하기도 했다.

번번이 밀리는 승진이었지만 그는 묵묵히 소임을 완수했다. 국내 최초로 경남 진해에 건설된 잠수함 부두 시설과 부산 해군3함대사령부 작전기지, 울산 남방파제 등 총 2조원 사업비의 대규모 사업을 성공시켰다. 부장 승진도 남들보다 늦었다. 하지만 이때부터는 현장 경험이 오히려 장점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책상머리에 앉아 있던 동료들과는 비교되지 않게 야전 감각이 커진 것이다.

식지않은 열정 덕분에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1년에 조 단위로 하도급을 주는 외주팀장에 임명된 것이다. "외주팀장은 당시 엄청 큰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자칫하면 비리가 발생할 수도 있는 요직이었기에 학연'지연에 둔감했던 저를 발탁한 것으로 보입니다. '포청천 정신'으로 일에만 열중했습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일한 덕분에 평생의 일 가운데 절반은 그때 다 한 것 같습니다."

그 뒤 상무(GK시공사업단 단장)로 진급하면서 세계 최장 해상건축물인 거가대교(사업비 2조3천억원) 건설 총책을 맡아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었다. 국내 빅5 건설사 가운데 지방대 출신으로는 유일한 토목분야 임원이다.

대구경북과 관련된 업무를 물으니 상무 시절 TK 담당 프로젝트 디렉터로 일할 때를 떠올렸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공무원과 협의 하에 지역업체들을 우선적으로 참여시키고, 기술 전수에도 앞장섰다. "당시는 너무나도 즐거웠습니다. 조직에선 지방대 출신이라고 천대받아 왔으나 지역 분위기는 전혀 달랐습니다. 오히려 같은 고향사람이라며 저를 따뜻하게 감싸주더군요. 비즈니스의 기본은 믿음인데 이렇게 믿고 반겨주는 곳에서의 사업이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사회적 성공 요인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소통인 만큼 지역도 소통의 구조를 키워야 한다는 게 포인트였다. "좋은 것은 계승발전시켜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과감히 변화시켜야 합니다. 외부 자본 유치가 불가피한 글로벌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미래에 대한 도전보다 현재에 안주하려는 인식은 지역사회를 병들게 하고 맙니다. 철저한 자기 성찰, 반성과 좋은 자극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이뤄져야 합니다."

조직의 발전 요인도 소통을 첫 번째로 꼽았다. 후배들에게 전하는 그의 조언은 언제나 동의보감에 나오는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이다.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라는 뜻이다. "세상에는 크게 두 종류의 기업이 있습니다. 하나는 룰(Rule)을 만드는 기업이고, 다른 하나는 만들어 놓은 룰을 따라가는 기업입니다. 블루오션을 개척하기 위해 룰을 만드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그러기 위해 내부 소통의 통로는 항상 열려 있어야 합니다. 소통이 단절된 조직은 금방 썩지만 그렇지 않은 조직은 언제든 구성원의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다양한 유인책이 개발됩니다."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남지 초'중'고를 나온 구 전무는 영남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했다.

박상전기자 miky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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