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발견, 작은 감동 등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이나 모임, 행사, 자랑할 일, 주위의 아름다운 이야기, 그리고 사랑을 고백할 일이 있으시면 원고지 3~5매 정도의 분량으로 사진과 함께 보내주십시오.
글을 보내주신 분 중 한 분을 뽑아 대구백화점 10만 원 상품권을 보내드립니다. 많은 사연 부탁드립니다.
보내실 곳=매일신문 문화부 살아가는 이야기 담당자 앞, 또는 weekend@msnet.co.kr
지난주 당첨자=장옥순(대구시 동구 검사동)
다음 주 글감은 '화장품'입니다
♥나처럼 살아온 야생초에 더 호감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하지요? 딱 질색이라며 쳐다보지도 않았던 식물을 키우려고 이렇게 다육농장에 오다니…."
점심을 먹고 오후 업무가 시작되기 전 약간의 시간이 있어 사무실에서 조금 떨어진 다육농장을 방문하였다. 작은 옹기에서 비집고 올라오는 다육종의 새순이 앙증맞고 자갈돌같이 생긴 식물에서 진분홍 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에서 사랑의 싹이 쑥쑥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와! 하는 감탄을 연발하며 요것조것 만져 보고 있으니 선배언니는 내가 변한 이유를 꼬집어 주었다. 식물을 보고 사랑스러움을 느끼게 된 까닭은 사무실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와서 마음의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란다. 듣고 보니 지난 4월 중순 이사를 오게 되면서부터 여유를 찾은 것 같았다.
그런 변화가 긍정적이라며 언니의 고향으로 나를 데리고 가 주었다. 자그만 텃밭을 지나 야산에 올라 이름 모를 야생초를 캐고 야생화를 뽑아서 잘 키워보라며 건네주었다. 깨진 기왓장이나 옹기 뚜껑이나 작아서 못 신는 아이들 장화에 심어도 되고 이빨 빠진 사기그릇, 유행 지난 커피잔 등 야생화는 어디든 다 잘 어울린다며 기르는 방법까지 가르쳐 주었다.
삶의 노하우를 들려주는 선배언니 따라 집을 가꾸고 야생화를 키우는 보람이 꽤 쏠쏠하다. 매끈한 화분보다 투박한 질그릇이 좋고, 새침데기 같은 화초보다 비바람에도 거뜬히 견뎌 내는 야생화가 좋아진 이유는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오게 되기 전까지 나 또한 야생화 같은 삶을 살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참고 또 참고 작은 행복을 위하여 참았던 지난날을 회상하니 야생화에 더 애정이 가는 것 같다.
김원희(대구 북구 태전동)
♥추운 겨울 견딘 꽃들 보며 용기 내
지금은 대학을 다니고 있는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복숭아꽃이 아주 예쁘게 핀 마을을 찾아 무작정 이사를 들어간 곳이 팔공산 뒤편 마을 와촌이었다. 낡은 촌집을 얻어 치우고 고치면서 아이들 키우고 살던 그때. 만발한 복숭아꽃 아래 피어 있는 진보라색 제비꽃에 마음이 쏠려 장날 시장에 나가 조그만 화분을 사서 밭둑에 핀 제비꽃을 옮겨 심은 것이 들꽃과 나의 첫 인연이었다. 그 후 아이들이 자라고 다시 도시로 나와 살면서 한동안 잊고 있던 들꽃들과 내 인연은 남편이 사준 풍로초 한 포기로 다시 이어졌다. 이제 들꽃과의 만남도 10년의 세월을 바라보고 있다. 그동안 좋았던 일도 많았고, 힘들었던 일도 참 많았지만 그때마다 내가 위로받고 나를 나답게 해준 것은 나와 함께한 가족과 그리고 내 꽃들이다.
지난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초겨울 첫 추위에 미처 겨울나기 준비를 못해준 꽃들을 포기하고 그냥 겨울을 보냈다. 따뜻한 방에 누워서도 기온이 뚝 떨어진 날 밤은 잠이 잘 안 왔다. 내가 포기한 멀리 떨어져 있는 꽃들에게 미안해서. 봄이 오고 나서도 한동안 용기가 안 나 꽃을 맡겨둔 농장에 가 보기가 두려웠다. 며칠 전 용기를 내어 농장에 들러보았다. 세상에! 그 추운겨울을 견디고 씩씩하고 용감하게 내 꽃들이 자라고 있었다. 얼마나 미안하고 또 미안한지 눈물이 핑 돌았다.
지금 나는 참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서 나를 일으켜 손잡아 주고 있는 것이 꽃들이다. 어쩔 수 없이 끌려가다시피 해서 시작한 약초 공부가 너무 재미있고 흥미롭다. 내가 아끼고 키우던 꽃들이 모두 사람을 고치는 약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지금도 내 시련은 진행 중이지만 억지로라도 시간을 내서 인근 야산을 오른다. 지천에 생명력을 뿜으며 자라나는 산야초들을 보면 절로 힘이 난다.
오늘도 발코니의 꽃들에게 물을 준다. 좁은 틈 속에서 저마다 얼굴을 내밀고 아침인사를 한다. 어젯밤 고양이 녀석한테 한입 물어뜯긴 무늬비비추 녀석은 죽을상을 하고 있다.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한 꼬마 백화등은 꽃향기가 장난이 아니다. 어린 녀석이 어디서 저런 향기가 나오는지. 언제나 듬직한 고사리 녀석들. 퍽!!! 물을 주려다 돌린 내 큰 엉덩이에 작은 화분에 살던 좀꿩의다리 녀석이 낙하를 했다. 화분은 박살이 나고. 아이고~ 미안 미안!!
형성주(대구 달서구 상인동)
♥ 그 예쁨에 향기에 취해 시간이 후딱
기차 철로변에도, 아파트 울타리에도 빨간 장미가 활활 타오르던 오월 어느 날, 수필 창작교실에서 함께 수업을 받은 문우(文友) 임오동 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리 집 정원의 야생화가 활짝 피었으니 한번 와서 보시고 글감도 건져 가시지요"라고. 그러면서 그때 같이 공부한 문우들도 여럿이 온다는 말까지 덧붙인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인 지난 토요일 오후, 팔공산 5부 능선자락에 자리 잡은 그의 집을 찾아갔다.
시골 정취가 물씬 풍기는 정원 앞에는 밀짚모자를 눌러 쓴 부부가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한다. 그의 손에는 핸드마이크가 들려있다.
살평상 위에 놓여 있는 녹차 한잔 마시기가 무섭게 천 평은 좋이 되어 보이는 넓은 야생화 정원으로 안내를 하더니 설명까지 해준다. 이 정원에는 약 250여 종류의 야생식물이 자라고 있다며 "이 꽃이 벌개미취, 매발톱이고, 저 야생화는 패랭이, 비비추, 원추리, 옥잠화, 붓꽃입니다"라며 한 포기, 한 포기를 손으로 짚어 가면서 원산지, 특징 등을 조곤조곤 설명해준다. 유창한 말솜씨가 오래 해본 솜씨이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다녀갔단다.
해마다 방문객이 늘어나는 터라 지난해부터는 매달 한 번씩 이곳에서 야생화 애호가들에게 무료로 야생화 이론과 현장실습 공개강좌를 개설, 운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꽃도 나누어 주고 있다. 국내 '야생초 연출작가 1호'답게 진정으로 들꽃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야생화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향내를 맡다 보니 금세 두어 시간이 후딱 지나가버렸다. 산 그림자가 정원까지 내려오는 시각, 대문을 나서는 우리들에게 패랭이꽃 한 포기를 손에 쥐여준다. 내리막길을 한참 내려가다 뒤돌아보니 부부가 손을 흔들고 있다.
"야생화 정원, 결코 우리부부만의 정원은 아닙니다"라고 힘주어 하던 말이 생각난다.
김성한(경산시 옥곡동)
♥ '야사모' 가입 후 행복 만끽
산으로 들로 뛰어놀던 그때, 발에 밟히는 것이 질경이, 민들레, 쑥부쟁이, 맨드라미 등 이름 모를 풀들이 즐비했다.
그때는 강둑에 풀이 그렇게 많아도 그러려니 하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온천지가 풀이고 숲이고 나무였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 친구들 모임이 있다며 나갔던 아내가 비닐봉지에 가득 담아 온 것들을 밤늦게까지 발코니에서 정리하고 있었다. 모종삽과 화분, 마사토까지 사들고 와서는 신이 나서 풀을 심고 있는 것이다. 어릴 적 농사일이 너무나도 하기 싫어서 농사 안 짓는 남자 만나려고 도시에서 직장 다니는 나를 선택했다더니, 시골 길가에 널린 잡초들을 캐 와서 밤늦도록 심고 있는 것이다.
"조그맣게 올라오는 꽃대 좀 봐요. 어릴 적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못둑에 앉아 삐삐 뽑아 먹으면서도 눈길 한번 주지 않았던 것들인데 이게 이렇게 예쁠 줄이야."
아내는 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야사모'에 가입하고부터 행복해 보인다. 야생화를 보고 있노라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언뜻 생각이 났다.
들판에 있으면 사람들에게서 멍이 들도록 밟히겠지만, 예쁜 화분에 심겨져 양지 바른 발코니에 있으니 어느 화초들보다 강인하면서도 사랑스러운 꽃이 되었다. 아내는 바람 좋고 볕 잘 드는 자리에 야생화를 앉혀놓았다. 산세베리아와 금전수는 기꺼이 자리를 내 주었고 이제 야생화가 우리 집 발코니에서 주인공이 되었다.
문성권(대구 수성구 지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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