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예술대학 콘서바토리화를 생각하자

대학들이 시끄럽다. 학생들이 학자금을 준비하느라 학업을 포기해야 하는 역설적 상황이 늘고 있다. 등록금 때문에 자살하는 학생도 적지 않다. 반값 등록금을 두고 대학, 학생, 학부모, 정치권이 의견을 달리하며 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

한나라당은 사학 재정의 건전성을 위해 부실 사학들이 자진 해산할 때는 학교 재산의 30%를 설립자에게 되돌려주는 인센티브제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서울대는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해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서울대 법인화 문제로 총학생회 학생들이 총장실을 점거하는 초유의 사태를 겪고 있다. 설상가상 쌍용차 노조, 공무원 노조 등이 가세할 것이라고 하니 대학의 문제가 특정 학교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예술대학엔 문제가 없는가. 1980~2000년에 예술 중'고등학교나 종합대학에 예술대학, 학과들이 크게 늘어났다. 마치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란 느낌도 있었고 과시적 형태도 없지 않았다.

이처럼 예술학과의 특성을 간과한 설립은 교사, 강사 채용 비리나 커리큘럼 부실 등으로 학생들에게 피해를 안겨주었다. 학생이 없어 스스로 문을 닫은 학교도 적지 않았고 지금은 실용대학으로 성격을 바꾸고 있는 추세다.

지난번 서울음대 교수의 파문으로 종합대학들은 재발 방지를 위해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때 문제가 된 것 중의 하나가 도제식 교육이다.

사실 도제식 교육은 거슬러 올라가 보면 중세기 상공업의 발달로 봉건사회가 퇴락하면서 자유도시가 발달한 데서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중앙집권적 관료정치 체제가 붕괴하면서 상공 계급의 교육적 요청을 충족시키기 위해 도제 교육이 발달한 것이다. 그러니까 도제식 교육은 일대일의 중세 시대의 교육 제도인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판소리나, 가야금도 명인들에게서 도제식 교육을 통해 전수되어 왔다.

그러나 현대의 유니버시티 안에서 이런 도제식 교육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선진국들은 콘서바토리를 통해 교육을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제도가 없다 보니 한국식으로 잘못 해석을 하면 '학원'이 된다. 학위가 없고 수료(diploma)가 되니 학력 만능 사회에서 졸업장이 아닌 수료증(證)이 힘을 받을 수 있겠는가.

예술대학 졸업자가 줄고 있는 것은 비싼 등록금을 들여서 졸업해도 먹고살 길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일반 직종과 달리 예술에서의 취업은 더욱 힘들다. 이제 우리나라도 학력사회에서 능력사회로 이동을 시작했다. 학위로 보장받던 시대가 지났음을 교육 소비자인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잘 알고 있으면서도 해결책이 없다.

서울대 법인화 역시 글로벌 대학으로서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충분한 검토를 거쳤을 것으로 본다. 법인화로 재정 부담이 클 것이라든가, 상업화를 우려하는 측면을 모르지 않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예를 들어 국립오페라단은 법인화 전보다 예산과 인원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늘었고 국립합창단 역시 3배 이상 증액되었다.

콘서바토리는 1992년 개교한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성적표다. 각종 국제 콩쿠르 등의 성적을 비교하면 전체 예술대학의 것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은 80% 이상을 독점했다면 더 이상 물어서 뭣하겠는가. 물론 예종도 학부모들의 높은 학력 선호에 부딪혀 학위를 다시 딸 수 있도록 하는 수정을 거쳐야 했지만 이제는 이것마저 풀어야 한다.

완전 독립된 형태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면 종합대학에 있으면서도 콘서바토리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한국형 콘서바토리를 만드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아무튼 과거 몇십 년 전의 제도를 그대로 끌어안고 있는 것은 해결책이 못 된다. 미리 준비하고 대책을 세우는 현명함이 있다면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하지 않겠는가. 최고의 대학인 서울대 법인화가 몰고 올 파장을 예측하는 것이 남의 일이 아닌 발등의 불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탁계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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