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1등, 죽어도 좋다. 한 방 제대로 맞고 싶다."
실제 로또 1등이 명(命)을 재촉하기도 하고, 더 큰 불행을 낳기도 했다.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인간관계 단절로 더 큰 좌절감에 빠진 이들도 적잖다. 그래도 로또 복권을 구입하는 이들은 한결같이 대재앙이 될지언정 로또 1등만 되면 '죽어도 원(願)이 없겠다'고 말한다.
많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로또는 '인생역전', '대박열풍','돈이 최고'라는 사회 분위기 속에 여전히 서민들의 희망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세태 속에 로또 1등 당첨자가 불행하게 된 사례들은 잊을만 하면 뉴스로 회자된다. 그만큼 로또에 관심이 많다. '1등 당첨자는 과연 어떨까'라는 궁금증은 불행한 사건으로 터지는 뉴스를 통해, 간접 짐작으로 해소된다. 1등 당첨자가 불행해지는 것에 대해서는 '아! 참 안타깝다. 어째 그럴까? 이해 안 된다'고 반응한다.
지난달 말 경북 포항에서 로또 1등 당첨자가 살해됐다. 로또 1등 당첨이 살해당한 이유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1등이 안 됐더라면 그런 불행한 일이 안 생길수도….'라는 생각은 할 수 있다. 그동안 지역에서도 로또 1등 당첨자들이 수십 명이 되겠지만 직접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도 한 다리 건너서는 그 후일담을 들을 수 있었다.
◆어선 기관장을 계속 했다면….
지난달 동서에 의해 살해된 로또 1등 당첨자는 원래 어선 기관장(50대 남성)이었다. 지난해 2월쯤 로또 1등(15억여원)에 당첨된 이후 곧바로 행복한(?) 무직자가 됐다. 그리고 당첨금으로 아파트도 한 채 사고, 4천300만원을 뒷날 자신을 죽인 윗동서에게 빌려주었고 일부는 유흥비로 사용했다. 이 돈을 다 쓰지 못하고 아직 수억대의 재산이 남아있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이 전직 어선 기관장은 로또 1등 당첨 후 1년 3개월 만에 이 세상과 하직인사를 하고 말았다.
하지만 숨진 어선 기관장 주변의 사람들은 "돈 때문에 불화가 생겨 가정생활이 원만치 못했지만 아직도 돈이 남아 있기 때문에 로또로 패가망신한 경우는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포항 사건 외에도 로또에 빠진 이들을 통해 1등 당첨자의 불행한 뒷얘기를 듣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1등 당첨금 50억원을 현금 담보로 은행에서 100억원을 대출해 부동산 투자를 하다 쪽박을 찬 사례나 기소중지자였던 특수강도 범죄자가 로또 1등에 당첨되면서 거액의 변호사비를 들여 풀려났다 그 돈을 다 쓰고 또 강도짓을 하다 잡힌 사례도 있었다. 로또 당첨이 가족 간 파탄으로 이어진 사례도 곳곳에서 들을 수 있었다.
◆'로또 1등, 차와 아내(애인)부터 바꾼다'
흔히 회자되는 이 말은 대체로 맞았다. 로또 1등 당첨자들은 대체로 3개월도 되지 않아 제일 먼저 차부터 바꾸고, 이후 새로운 환경의 좋은 집으로 옮겼다. 그리고 주변의 소중한 사람과도 멀어지면서 자신만의 유흥세계로 빠져드는 경향이 뚜렷했다.
대구의 한 사례는 흥미롭다. 친구 여러 명이 함께 낸 돈으로 로또를 샀는데, 그 중 로또를 구입한 한 명이 혼자 1등 당첨금을 꿀꺽 하려다 소송까지 벌어진 사건이 있었다. 법원은 당첨금을 각자에게 나누는데, 당첨번호를 쓰며 크게 기여한 1명에게는 돈을 조금 더 주는 것으로 조정해 판결했다. 이 사람은 당첨 이후 가만히 입닫고 있다 제일 먼저 차를 고급 중형차로 바꿨는데, 이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로또 1등 당첨의 의심을 받는 빌미가 됐다.
대구의 한 언론사에서 일했던 한 젊은 직원도 로또 1등에 당첨되자, 가장 먼저 애인에게 이별 통보를 했다. 아무래도 새 차와 함께 멋진 애인(?)도 로또 당첨자들에겐 로망의 하나로 여겨지는 듯 했다. 로또 1등에 당첨된 대구의 한 여성 회사원도 남자 친구에게 어느날 연락을 끊고, 잠적해 버렸다. 이 남자친구는 영문도 모르고 이별 통보를 받았으나, 한참 지난 후에야 여친이 로또 1등에 당첨된 후 자신을 차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삶의 터전 떠나고, 인간관계 바뀌고
'05, 08, 22, 28, 33, 42'. 제319회 로또복권 1등 당첨 번호다. 전국 최초로 로또 번호 6개를 두 번이나 똑같이 쓴 로또 더블 당첨(2계좌)으로 42억6천만원의 횡재를 맞은 이 행운의 사나이는 자신이 살던 동네를 소리소문없이 떠났다. 그 복권을 산 서부정류장 인근 삼일병원 옆 로또 복권방 주인 김경림 씨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2개 번호 다 당첨됐는데 이중으로 돈을 다 받을 수 있느냐'고 물은 것이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 사나이는 소문만 무성하다. 무직자에서 삶이 180도 바뀌어서 대구 상류층들이 사는 고급 아파트 또는 호화 주택 등 어딘가에서 살고 있긴 하다고.
역시 이 복권방에서 2006년 1등에 당첨된 관문시장의 한 노점상 할머니는 계속 생업을 이어나가려 했지만 주변에 소문에 쫙 퍼지면서 가족들에 의해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다. 그 뒤로 이 할머니는 관문시장의 로또 전설로만 회자되고 있다.
'대한민국은 로또 1등이 살기에 힘든 나라', 이 말도 대체로는 인정해야 할 부분이 많았다. 주변 친척들이나 회사 동료, 친구 등이 '누가 로또 1등에 당첨됐다'고 하면, 문전성시를 이루며 돈 빌려달라고 하는 이들이 줄을 잇고, 로또 부자, 횡재한 인생 등으로 빈정거려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영국에서도 복권에 당첨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오랫동안 몸담았던 지역사회를 떠났다는 흥미로운 보고서가 발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포항'이상원기자 seagull@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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