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행복미술] 임영균의 남극 풍경

문명사회에 지친 폴 고갱이 순수를 찾아 남태평양의 섬으로 찾아든 것처럼 일찍이 원시를 동경했거나 야만에서 창조적 상상력을 구하려 한 예술가들은 많았다. 피카소를 비롯한 큐비즘 작가들에게는 아프리카 흑인미술의 조형성이 큰 영감을 주었다. 초현실주의는 아예 내면에 잠자고 있는 원시성을 깨우는 쪽으로 눈을 돌렸다. 또 문화의 원형에 대한 추구는 태고의 자연을 보고자 극지 지방으로 떠나는 여행으로까지 발전해 현대예술 곳곳에 그 흔적을 남긴다.

추상조각을 닮은 사진 속의 이 물체는 빙하의 파편이 해수에 떠밀려 육지에 올라온 것이다. 신비한 모습이 거장의 그 어떤 작품 못지않게 매력적이다. 순백의 형상이 푸르고 어둑한 배경의 풍광과 대조를 이루어 더욱 순결하게 빛나고 있는 것을 작가는 황홀해하면서도 슬픈 눈빛으로 응시한 듯하다. 자연의 마력이 빚어놓은 아름다움의 극치를 바라보는 시선에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것은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동시에 어떤 자각이 뒤따르기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그동안 지구환경에 가한 테러에 가까운 인류의 온갖 파괴행위가 이곳까지는 그 영향이 미치지 않기를 바라지만 이미 불가능한 바람임을 읽는 것 같아서다.

김영동(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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