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튼(Moncton)에서는 생선 구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한국에서는 고등어, 갈치, 동태, 오징어, 광어 등 각종 해산물이 넘쳐나지만 이곳에서는 손질해 놓은 연어나 바닷가재가 전부입니다. 한국에서는 결혼기념일이나 가족 모임, 데이트 때 큰마음 먹어야 맛볼 수 있는 바닷가재가 가장 흔한 수산물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뉴 브룬스위크(New Brunswick) 주에서는 봄이면 바닷가재 축제가 열리는데 저렴한 가격으로 각종 바닷가재 요리를 맛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람 입맛에는 고등어, 갈치가 최고인 것 같습니다.
우리 가족은 자주 고등어를 그리워합니다. 무와 갖은 양념으로 조린 고등어' 갈치조림, 오징어 무침과 광어회를 떠올리면 입에서 군침이 절로 돕니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은 연어 외에는 생선 종류를 잘 먹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 사람들은 낚싯대를 들고 바다로 나가 고등어나 장어를 직접 낚아 옵니다. 처음에는 취미로 하던 것이 나중엔 생업(?)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저도 광어를 낚는다는 소리에 만사 제쳐 두고 여러 번 따라나선 적이 있는데 매번 허탕 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생선 파는 시장에 가면 쉽지는 않지만 고등어와 오징어를 구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캐나다 사람들에게 고등어는 식용이 아니라 낚시 미끼 또는 양식 바닷가재 먹잇감입니다. 그들 눈에는 고등어를 사려는 동양인이 이상하게 보이는지 제게 직업을 물어 옵니다. 집에서 먹을 거라고 하면 모두들 놀라는 표정입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고등어 때문에 한국인 이웃과 사이가 멀어진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습니다. 작년 가을 한국 사람들끼리 고등어를 저렴하게 구입해서 각 가정에 나눠 주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백방으로 뛰어다녀도 한국 가정 모두가 나눠 먹을 수 있는 물량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운 좋게 한 곳에서 고등어를 구할 수 있다는 연락이 왔는데 300여 마리로 턱없이 부족해서 계획을 취소하게 됐습니다.
이미 취소된 계획이지만 고등어를 놓치기 아까워 저 혼자 300㎞ 넘게 운전해 가서 고등어를 사왔습니다. 고등어를 사기 위해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를 간 셈이죠. 즐거운 마음으로 이웃에게 나눠 주었습니다. 그런데 고등어를 제가 아는 가정에만 나눠 줬다는 게 사건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고등어를 받지 못한 것이 못내 서운했던 한 사람이 어부까지 동원하여 엄청난 물량의 고등어를 구매하여 다른 집에 나눠 주고는 모임의 일을 그만둬 버렸습니다. 고등어로 인한 섭섭한 감정이 결국은 이웃을 잃는 사건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지요.
참으로 씁쓸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꿈꾸며 먼 곳까지 왔는데 사소한 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들이 생깁니다. 고등어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 서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못 했습니다. 공식적인 계획이 무산됐으니 그 계획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가까이 사는 사람끼리라도 나누려고 했던 제 순수한 마음이 퇴색되어 버렸습니다. 따지고 보면 대화가 부족한 데서 벌어진 일입니다. 낯선 나라에서 정착하기 위해 허리띠 조르고 사는 동안 작은 일에도 예민해지고 대화가 단절되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캐나다 사람들과의 대화가 편할 때가 있습니다. 거리에서, 좁은 공간에서 서로 부딪쳐도 인사를 나눕니다. 노인과 아이가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이민자인 저도 옆집 아저씨랑 산책하는 노인, 조깅하는 청년과 인사를 나눕니다. 옆 건물의 바텐더와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친구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친구라고 해서 서로의 나이와 직업, 배경을 시시콜콜 묻고 인정으로 엮이지는 않아도 된다는 점이 참 좋습니다.
진솔한 대화를 나누진 못해도, 말 속의 깊은 뜻을 알지 못해도, 편하게 인사하고 즐겁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서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친구가 무슨 소용이 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정에 연연하다가, 대화보다는 정(情)을 원하다가, 그 정에 배신당했다고 느끼는 순간 더욱 마음 상하는 일을 수없이 겪어와서인지 저는 깔끔한 인간관계가 좋습니다. 고등어 사건 이후 인간관계, 대화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khj09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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