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를 괴롭혀온 대표적인 질병인 천연두는 1977년 소말리아를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단 한 건도 발병이 보고된 사례가 없다. 그래서 생화학 테러 예방 및 질병 연구를 위한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와 러시아의 국립 바이러스학 및 생명공학연구소의 보관분 이외에 세계 각국이 보관하고 있던 천연두 바이러스 시료는 모두 폐기됐다.
그러나 세균과의 전쟁에서 인류의 전체 전적을 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1928년 알렉산드 플레밍이 기적의 항생 물질인 페니실린을 개발하면서 인류는 승리를 확신하게 됐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페니실린이 상용된 지 불과 몇 년이 안 돼 페니실린에 내성을 지니는 황색포도상구균이 등장했다. 이후 지금까지 인간과 세균은 쫓고 쫓기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결과는 인간의 판정패다. 페니실린 내성의 황색포도상구균을 잡는 메타실린 제제가 개발됐지만 여기에 내성을 지닌 세균이 또 나타났다. 인간은 최후의 항생제라는 반코마이신으로 대응했지만 역시 이를 무력화하는 슈퍼박테리아의 출현을 허탈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세균과의 전쟁은 항생제 개발 속도와 세균의 내성 획득 속도 간의 전쟁이다. 여기서 인류는 지고 있다. 항생제를 개발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평균 20여 년이지만 세균이 내성을 획득하는 데는 불과 1년밖에 걸리지 않는다. 인간의 두뇌가 항생제를 무력화하는 세균의 변이 능력을 따라가지 못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비결은 세균 간 정보 교환이다. 특정 박테리아가 항생제 내성 유전자를 개발해 다른 질병을 일으키는 박테리아에 전달해 항생제 공격을 받은 적이 없는 박테리아가 같은 내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향후 세균과의 전쟁의 승패는 바로 이 같은 정보 교환 시스템의 차단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전망은 우울하다. 모든 항생제가 듣지 않는 '후(後)항생제 시대'의 도래라는 끔찍한 시나리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독일 북부를 시작으로 유럽을 공포로 몰아놓고 있는 장출혈성대장균(EHEC) 감염 사태가 3주를 맞고 있지만 치료법의 가닥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과연 인간은 만물의 영장인가. 세균과의 전쟁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지금까지 결과는 적어도 세균이 인간보다 더 똑똑해 보인다.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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