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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 구제 골목도 북적…"폐업가게서 옷 떼와 만원 이하"

사진=지난달 30일 오후 대구 봉덕시장 구제옷 골목이 불경기에도 활기가 넘치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사진=지난달 30일 오후 대구 봉덕시장 구제옷 골목이 불경기에도 활기가 넘치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6일 오후 3시 대구 남구 봉덕시장. 한 옷가게에서는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손님이 "꽃장식이 떨어졌는데 천원만 깎아줘"라며 샌들을 들어보이자 주인은 할 수 없다는 듯 천원 한 장을 내줬다. 가게 주인 정영순(52'여) 씨는 "5천원짜리 신발을 사면서도 천원을 깎는다"며 "다들 어려우니 싸게 줘야지 어쩌겠냐"며 웃었다.

구제 골목들이 고물가 특수를 누리고 있다. 서민들의 얇아진 지갑 사정 때문에 저렴한 구제 의류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

교동시장, 관문시장, 봉덕시장 등 구제골목이 자리 잡고 있는 곳에는 불경기에도 활기가 넘친다. 만원 한 장으로 쇼핑이 가능하다 보니 물가가 올라갈수록 손님이 늘어난다. 봉덕시장에서 구제 옷가게를 운영하는 박미경(38'여) 씨는 "최근 2, 3년 새에 손님이 2배가량 늘었다"며 "단골손님은 한 번에 5만원어치도 사가니 천원 장사라도 쏠쏠하다"고 말했다. 저렴하지만 세련된 디자인도 손님들이 지갑을 열게 하는 데 한몫한다. 여름철에 맞게 발등이 시원하게 드러나는 샌들부터 스트라이프 티셔츠, 명품스타일 가방까지 사용 흔적만 조금 있을 뿐 디자인은 최신 유행에 뒤지지 않는다. 정주은(22'여) 씨는 "시장에서 파는 구제라도 세련된 디자인이 많아 종종 찾는다"며 "오늘도 2만원을 들고 나와 티셔츠 세 장과 구두 한 켤레를 샀다"고 말했다.

옷부터 신발, 가방, 수영복 심지어는 속옷까지 없는 게 없다. 구제의류들 사이에는 가격표도 떨어지지 않은 새 옷들도 있다. 최근 전국 각지에서 폐업하는 옷가게들이 늘면서 새 옷을 구제로 처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김윤화(41'여) 씨는 "운 좋게 새 옷을 찾았다"며 "8천원을 주고 샀는데 옷가게에서 사려면 5만원은 줘야 될 것"이라고 했다.

구제 골목 중에서도 봉덕시장은 대구 구제의 원조격이다. 인근에 주한 미군 부대가 들어서면서 구제 옷가게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 초기에는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옷가지들을 팔았지만 지금은 국산부터 일본,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의류까지 있다. 봉덕시장에 위치한 구제가게는 하나둘 늘어나 무려 50여 곳에 이르고 있다.

최근에는 일반 옷가게들도 자본이 적게 들고 손님이 몰리는 구제 옷가게로 전업하고 있다. 시장 내 옷가게는 90% 이상이 구제 의류를 취급한다.

구불구불한 골목 속에서 예상치 못한 순간 마음에 드는 가게와 물건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봉덕시장의 또 다른 재미. 이렇다 보니 구제의류 쇼핑을 위해 봉덕시장을 찾는 관광객들도 종종 있다. 임남순(45'여) 씨는 "대전에서 놀러왔다가 친구가 옷이 싸다고 해서 들렀다"며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여기서는 안 통한다"고 말했다.

김봄이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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