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미친 등록금'] <1>탈출구 없는 빚더미 대학생

졸업 전 이미 1∼2천만원 채무자 신세…

7일 대학생 홍은주씨가 한 음식점에서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7일 대학생 홍은주씨가 한 음식점에서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미래를 담보로 오늘을 빌리다, 대학생 골병드는 '미친 등록금'

한국 대학생의 요즘은 '탈출구가 없는 터널'이다. 연간 1천만원대로 치솟은 등록금을 내려고 대출을 받고, 이 빚을 갚기 위해 '알바(아르바이트) 전쟁'에 뛰어들지만 졸업 뒤 백수로 전락, 신용불량에 빠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최근 '반값 등록금'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해결책은 없을까.

등록금 부담에 허리가 휘는 대학생과 함께 무너지는 가정, 대학의 구조적 문제를 짚어본다.

◆미래를 담보로 오늘을 빌리다

대구의 한 사립대 4학년 박상수(가명'26) 씨는 자신을 '빚쟁이'라고 소개했다. 학기당 300만원인 등록금을 내기 위해 2년 동안 학자금 대출을 4번이나 받았다. 박 씨 앞으로 빚이 1천300여만원이 쌓였다. 그는 학자금 대출을 받을 때 상환 시기를 앞당겨 졸업 전에도 대출금을 갚아야 한다. 이 때문에 박씨는 2008년 말부터 매달 30만원씩 빚을 갚다가 최근엔 상환액을 60만원으로 올렸다. 대출금 때문에 낮에는 계약직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고 밤에 공부하는 '올빼미족'이 됐다. 박 씨는 "하루 9시간씩 일하고 한 달 100만원을 벌기 위해 이번 학기부터 야간 수업을 신청해서 듣고 있다. 세상살이가 너무 힘들다"고 했다.

같은 날 오후 경북 경산의 한 사립대 학생지원센터. 취업 정보를 얻으려는 학생들 틈에서 김성민(가명'26) 씨가 의자에 기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김 씨는 "주말 알바를 시작한 뒤로 평일 오후만 되면 졸음이 쏟아진다"고 했다. 컴퓨터공학과에 재학 중인 그는 한 학기에 500만원씩 등록금을 3번 대출받았고 매달 10만원씩 이자를 갚고 있다. 올여름 졸업을 앞둔 김 씨 앞에 남겨진 것은 취업 합격통지서가 아니라 425만원이 찍힌 마지막 등록금 고지서다. 그는 "대학 울타리를 벗어나면 졸업과 동시에 대출금 상환이라는'족쇄'가 차인다. 졸업을 미뤄야 할 것 같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김 씨는 주말마다 예식장 알바를 하며 일당 5만원을 손에 쥐고 있다. 김 씨는 "친구들은 주말마다 도서관에서 토익(TOEIC)과 취업 공부를 하고 있지만 대출 이자만큼은 부모님께 신세 지기 싫어 알바를 시작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미친 등록금' 알바로 버티지만

2009년 졸업을 앞두고 대학생 조민수(가명'27) 씨는 1년 동안 휴학을 했다. 취업을 위한 휴학이 아니라 등록금을 벌기 위해서였다. 자동차부품공장에서 일하면서 1년간 한 달에 100만원씩 벌었다. 하지만 실직한 아버지 때문에 번 돈을 '생활비'로 내다 보니 조 씨 손에 남은 것은 300만원뿐이다. 한 학기 등록금 400만원을 채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학자금 대출에 서명해야 했다.

"1년간 열심히 일했는데 헛수고였어요. 대출받지 않으려고 휴학까지 했는데. 어휴 이렇게 해서라도 대학 졸업장을 따야 하는지…." 그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경북 경산에 사는 김지영(가명'23'여) 씨는 서울의 사립대에 다니다가 지난해 휴학계를 내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시각디자인과에 다니는 김씨는 자신의 전공으로는 취업이 힘들 것 같아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김 씨 역시 1천600만원의 학자금 대출금을 등에 업고 있다. 처음에는 빨리 졸업한 뒤 취업해 학자금을 갚아갈 생각이었으나 바늘 구멍 같은 취업문 앞에서 마음을 돌렸다. 매달 7만원씩 대출금 이자를 갚고 생활비도 벌 겸 김씨는 독서실 총무 알바를 뛴다. 매달 40만원씩 월급을 받아도 대출금 상환이 시작되는 2013년까지 공무원에 합격하지 못할까봐 항상 불안하다고 했다. 그녀는 "대출 이자와 원금을 함께 갚기 위해 다른 알바도 몇 개 찾고 있는 중"이라며, "내년에는 꼭 시험에 합격해 제대하는 남동생 등록금을 대주고 싶은데 공부할 시간도, 힘도 없다"고 눈물을 삼켰다.

◆대학생들 학자금 대출로 버틴다

대학정보공시센터 '대학 알리미'에 따르면 2009년 대구 주요 4년제 대학 학자금 대출자는 전체 학생의 20%에 달한다. 대구권 대학 5곳 중 학자금 대출자 비율이 가장 높은 계명대의 경우 전체 재학생 4만4천50명 중 18.2%인 7천996명이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두 번째로 대출자 비율이 높은 대구대는 전체 재학생 3만6천396명 중 17.6%인 6천388명이 대출자였다.

대구가톨릭대는 16.9%, 영남대는 16.2%가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지역 대학생 10명 중 2명가량이 졸업 전 채무자가 되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20대 '신용불량자'(금융채무불이행자)가 늘어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신용회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개인워크아웃' 신청자 1만8천786명 가운데 29세 이하가 차지하는 비중은 9.1%(1천715명)로 전분기보다 0.4% 포인트 증가했다. 이는 30대, 40대 신청자가 2009년에 비해 줄어든 것과는 대조적이다. 30대 신청자는 34.2%에서 33.8%로, 40대는 35.2%에서 34.8%로 소폭 감소했다.

대구청년회 박석준 사무국장은 "1천만원을 육박하는 대학 등록금은 어느 가정에나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 전부터 대학생들이 신용불량자가 되는 사회적 문제를 막으려면 정부가 근본적인 등록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수영'백경열'황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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