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규리의 시와 함께] 웃기는 짬뽕

5층에 있는 직업소개소에서

신상명세서를 적고 나오는데

문 앞 복도에

누가 먹고 내 놓은

짬뽕그릇이 보인다

바닥이 보일 듯 말듯

남은 국물

1층까지

죽기 살기로 따라 내려오는

참을 수 없는

냄새

그 짬뽕

국물

신미균

짜장면(자장면이 아니라)엔 그리움이, 짬뽕엔 허기가 따라 나오죠. 이 둘의 가문은 매우 다르지만 늘 함께 동거하는 사이죠. 따라서 주문할 때마다 너나없이 갈등하는지라, 한때 반반씩 주는 짬짜면이 유행한 적 있지만 그거 곧 사라져 갔죠. 왜냐면 둘 다 먹으면 아무 맛도 못 느끼게 되거든요. 그야말로 허탕인 셈이죠.

그렇게 인생도 한순간의 선택 아니었을까요? 절실한 한 가지에 베팅하지 못한 욕망이 우왕좌왕의 운명을 불렀을까요? 직업소개소에 들렀다 나오는 사람, 오늘도 허탕인 채 하루를 보낸 거지요. 불러낼 동창생 하나 없고 자존심은 이미 바닥이 나 오늘이 며칠째인지 헤아리다 그만둡니다. 이 생의 비극이 여기에서 끝나기를, 더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길.

냄새만 맡고도 배부른 기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다면 우리 조금은 덜 비참했을 텐데.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5층에서 1층까지 죽기 살기로 따라오는 짬뽕국물 냄새. 죽기 살기로 버티어야 할 이 허기진 실존. 나라는 존재는 얼마나 "웃기는 짬뽕"인지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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