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志操

조선 왕조를 개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이다. 국왕이 여러 재상들을 불러 모아 잔치를 베풀었다. 그들은 모두 고려 왕조에서 높은 관직에 있었지만, 새 왕조로 배를 갈아타고 벼슬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정승이 거나하게 취기가 오르자 설매(雪梅)라는 기생을 희롱했다.

"네가 아침은 동쪽에서 먹고 잠은 서쪽에서 잔다고 들었다. 그러니 이제는 나와 함께 자는 것이 어떠냐…?" 그러자 기생이 하는 말이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하는 천한 몸으로 왕(王)씨를 섬기다가 또 이(李)씨를 섬기는 정승을 모시는 것이 어찌 합당하지 않겠사옵니까…!"라는 것이었다.

기생 설매의 대답에 그 정승은 낯을 붉히면서 고개를 떨어뜨렸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긍익이 지은 야사총서(野史叢書) 연려실기술에 전하는 일화이다.

'지조란 순일(純一)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確執)이요, 고귀한 투쟁이기까지 하다. 지조가 교양인의 위의(威儀)를 위하여 얼마나 값지고 그것이 국민의 교화에 미치는 힘이 얼마나 크며, 따라서 지조를 지키기 위한 괴로움이 얼마나 가혹한가를 헤아리는 사람들은 한 나라의 지도자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먼저 그 지조의 강도를 살피려 한다….'

청록파 시인 조지훈은 1950년대 자유당 말기의 혼란하고 부패한 정치 현실을 개탄하며 지조론(志操論)이란 글을 썼다. 정치 지도자란 사람들이 신념과 지조도 없이 변절을 일삼는 세태를 냉철한 지성으로 비판한 교훈적 중수필이다.

김준엽 고려대 총장이 이틀 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일제 말기 광복군으로 활동한 것을 시작으로 우리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도 온몸으로 자유와 정의를 실천해 왔던 지성인이다. 그는 역대 정권의 잇단 영입 제의에도 정치의 탁류에 한 번도 몸을 담그지 않은 꼿꼿한 선비였다.

특히 1988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 당선자에게 국무총리직을 제안받고도 고사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지식인들이 벼슬에 굽실거리는 풍토를 고치기 위해 나 하나만이라도 그렇지 않다는 증명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지훈 시인은 '지조는 선비의 것이요 교양인의 것'이라고 했다. 지사적 품격을 지닌 정치 지도자가 그리운 오늘, 참으로 지조 있는 선비 한 분을 잃었다.

조향래 북부본부장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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