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 화장품

"남들은 아내를 미인이라지만, 난 안다. 화장발이라는 걸"

♥수세미 화장수에 뾰루지 없어져

2년 전, 회사 일로 스트레스받는 일이 많았다. 야근과 스트레스가 이어지다 보니, 어느 순간 얼굴 전체가 뾰루지로 덮여버렸다. 원래 건강한 피부라고 자부하는 나였지만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한데다가 뾰루지까지 나니, 감당할 수가 없었다. 피부과에도 다녀보고, 좋다는 값비싼 화장품을 사들였다. 그런 화장품이 아니면 피부가 더 악화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언니가 한동안 이런 나를 지켜보더니 작은 병 하나를 건네줬다. 집에서 직접 만들어 쓰는 수세미 화장수인데, 한번 써보라고 권했다. 나는 건성으로 고맙다고 말하고는 책상 서랍 깊숙이 넣어만 두었다. 피부과 약을 써도 피부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속상해질 대로 속상해졌다.

그때 그 언니가 준 화장수가 생각났다. 별로 미덥지는 않았지만 워낙 피부가 좋은 언니의 추천이니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그때부터 아침저녁으로 깨끗하게 세안한 후 그 화장수를 듬뿍 뿌렸다. 출근하지 않는 날은 절대 화장을 하지 않고 수세미 화장수를 수시로 뿌려주었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3, 4일쯤 지나자 얼굴 가득하던 뾰루지가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당장 사무실 언니에게 이야기하니, 언니 주변에 수세미 화장수로 효능을 본 사람이 의외로 많다고 했다. "언니, 이렇게 좋은 걸 진작 얘기해주지 그랬어요." 언니는 혹시 나에게 안 맞을지 몰라 선뜻 권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 후부터 나는 수세미 수액을 구입해 글리세린을 섞어 화장수를 만들어 쓰고 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수세미는 옛 여인들의 화장품으로 이용될 만큼 효능을 인정받고 있었다. 주변에 추천해서 고맙다는 인사를 듣기도 했다. 독한 피부약, 수십만원짜리 명품 화장품보다 때로는 자연의 산물이 더 좋을 때가 있다. 수세미 화장수에서 나는 그것을 배웠다.

신세리(대구 동구 지묘동)

♥딸 덕분에 새 화장품 구입

대학생 2학년인 딸아이는 안경 대신 렌즈를 끼고 다닌 지 2년째 접어들었고 알람시계가 시끄럽게 울어대면 겨우 일어나 거울 앞에서 한 시간 반을 허비하고 스쿨버스 시간 맞추느라 아침밥은 먹지도 못하고 나가버리기 일쑤였다. 조금만 일찍 일어나라고 잔소리를 해도 잠을 푹 자야 개운하다면서 말대꾸를 늘어놓는다.

밥은 안 먹어도 화장은 꼭 하고 나가는 딸을 보며 "화장 안 해도 예쁠 나인데 굳이 뽀얗게 발라야 돋보일까?" 하면 답답한 소리를 한다며 또 대꾸를 하던 딸은 엄마도 화장품 너무 오래 쓰지 말고 유통기간 지난 것은 과감하게 버리란다.

버릴 게 없다는 말에 비웃던 딸이 어느 날, 외출하고 돌아오니 휴지통에 화장품을 잔뜩 버려두었다. "얀마~ 니 맘대로 버리면 어떡해! 하나 사주고 버리든지." 다시 주워 화장대에 올려놓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외출을 하고 돌아오니 또 화장대에 화장품이 없어졌다. 휴지통을 들여다봤는데도 화장품이 보이지 않았다.

"얀마~~ 엄마 화장품 어디 있어?" 딸이 그랬다. 엄마가 또 주울까봐 바깥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딸이랑 말다툼이 벌어졌고 퇴근하고 온 남편이 묻는다. 자초지종 이야기를 했더니 아까워 못 버리면 대신 버려주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면서 딸 손을 들어준 남편은 십 만원을 건네주면서 보태서 화장품을 사라고 했다. 딸 덕분에 새로 구입해 잘 쓰고 있지만 아직도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내 화장품.

이순미(대구 북구 대현동)

♥생얼로 자는 모습 카메라에

언젠가 아내에게 이렇게 말한 적 있다. "당신은 화장품 회사 앞에 가서 절을 백 번 해도 모자라겠다." "흥, 미인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말도 못 들어 봤어요" 하면서 도끼눈을 뜬다. 아무리 봐도 예쁜 얼굴은 아닌데, 거울 앞에 오래 앉아 있다가 나오면 작품이 만들어지곤 한다. 꼭 TV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아내의 말처럼 미인은 만들어지는 것인가 보다. 왜냐하면 아내는 꽤 부지런한 편이다. 휴일이라고 해서 늦잠 자거나 화장기 없이 푸석푸석한 얼굴로 지내는 법이 없다. 금방 세수하고 로션을 바른 것처럼 윤기 나게 얼굴을 다듬는 걸 보고 처음엔 기미, 주근깨를 감추기 위해서인 줄 알았다.

아내는 부지런한 습관 덕분에 남들에게 미인이란 소리를 듣기도 하는데, 난 100% 화장품 덕분임을 안다. 잠자기 전 세수를 하고 생얼로 자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세월이 참 좋아지긴 좋아졌어, 화려한 색조화장을 지우고 나니 완전 딴 사람이 되었군!'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며 자는 모습을 디지털카메라에 담아 두었다.

생얼로 자는 모습이 아주 가관인 본인의 모습을 본 아내의 한 마디. "역시 난 화장품 미인이야. 그치?"

김병욱(대구 북구 태전동)

♥화장품 바르는 날은 잔치 있는 날

어려웠던 옛 시절을 잊지 말라는 어머니는 지금도 밥이며 반찬이며 버리는 것이 없다. 그런 어머니를 보고 자식들은 "엄마 같은 사람들만 살면 경제가 안 돌아갈걸" 한다. 그렇게 항상 검소하신 어머니는 몇 년이 지난 화장품을 지금도 바르고 계신다. 오래되면 못 쓴다면서 새로 화장품을 사다 드리지만 어머니는 아깝다면서 버리지 못하신다. 오히려 화장품이 있는데 사왔다며 야단을 치시면서 가져가서 바꿔오라고 호통을 치신다.

어머니 고집에 못 이겨 반품된 화장품은 내 화장대를 차지하고 있다. 어머니가 화장품을 바르는 날은 정해져 있다.

친척들이나 친구 분 잔치가 있을 때, 멀리 여행을 떠날 때, 그런 날이 아니면 화장품을 안 쓰시니 화장품이 묵을 수밖에 없었다. 순간 어머니께 선의의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쓰던 화장품 가져오면 새것하고 교환해 준대" 하고 말했더니 어머니는 좋아하시면서 "그런 것도 있나. 저것도 되나?" 하신다. 그렇게 해서 몇 년 묵은 화장품은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새로 산 화장품을 그 자리에 놓으시더니 어머니는 무척 좋아하신다.

거짓말을 한 것은 죄송하지만 어머니가 새 화장품을 열어 향을 맡아 보시는 표정을 보니 맘에 드시는 것 같다. 마음속으로 말했다. "엄마, 예쁘게 사세요!"

이유정(대구 달서구 이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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