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행복을 찾아서] 24. 독자가 보낸 사연<11>

오! 해피 버스데이…인사로 맞아준 말쑥한 기사님 그 친절에 하루종일 유

동심 참 오래된 사진입니다. 4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사진 속 주인공들은 중년도 훌쩍 넘겼을 터입니다. 텔레비전 보기도 쉽지 않던 때입니다. 동네 부잣집 말고는 텔레비전이 없었으니까요. 인심 고약한 어떤 주인은 시청료를 받기도 했다지만 대개 동네 사람들이 저녁에 일일연속극 할 때쯤이면 삼삼오오 그 집으로 몰려들곤 했습니다. 낮이면 세상 전부가 아이들 놀이터였습니다. 한창 도로와 물길을 정비하던 때라 공사장도 많았습니다. 그만한 놀이터도 없었죠. 인터넷과 게임기가 없는 덕분에 오히려 더 행복했습니다. 모름지기 노는 것은 몸과 몸이 부대끼고, 마음과 마음이 통해야 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노는 법까지 배워야 합니다. 사진=최병오(제16회 매일전국어린이사진공모전 장려상), 글=김수용기자
동심 참 오래된 사진입니다. 4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사진 속 주인공들은 중년도 훌쩍 넘겼을 터입니다. 텔레비전 보기도 쉽지 않던 때입니다. 동네 부잣집 말고는 텔레비전이 없었으니까요. 인심 고약한 어떤 주인은 시청료를 받기도 했다지만 대개 동네 사람들이 저녁에 일일연속극 할 때쯤이면 삼삼오오 그 집으로 몰려들곤 했습니다. 낮이면 세상 전부가 아이들 놀이터였습니다. 한창 도로와 물길을 정비하던 때라 공사장도 많았습니다. 그만한 놀이터도 없었죠. 인터넷과 게임기가 없는 덕분에 오히려 더 행복했습니다. 모름지기 노는 것은 몸과 몸이 부대끼고, 마음과 마음이 통해야 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노는 법까지 배워야 합니다. 사진=최병오(제16회 매일전국어린이사진공모전 장려상), 글=김수용기자
우리 가족은 등산이나 자전거여행을 갈 때면 으레 컵라면과 보온물통을 들고 나선다. 힘든 산행 중간에 경치 좋은 곳이나, 자전거 바퀴가 힘들게 느껴질 즈음, 엉덩이 대고 앉아 휴식 겸 후후 불어가며
우리 가족은 등산이나 자전거여행을 갈 때면 으레 컵라면과 보온물통을 들고 나선다. 힘든 산행 중간에 경치 좋은 곳이나, 자전거 바퀴가 힘들게 느껴질 즈음, 엉덩이 대고 앉아 휴식 겸 후후 불어가며 '만찬(?)'을 즐긴다. 남은 물로 만든 커피 한잔은 훌륭한 디저트가 된다. 무엇보다 집에서는 라면을 먹고 싶을 때 먹지 못한 아이는 자기가 물을 붓고 기다리는 동안 재잘대며 '컵라면' 하나의 행복에 마냥 즐거워한다. 글/일러스트=고민석 komindol@msnet.co.kr

버스를 자주 탑니다. 시간은 좀 더 걸리지만 훨씬 여유롭습니다. 아침에 10분 정도만 서두르면 됩니다. 습관처럼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버스에 오릅니다. 어느 날 아침 북적대는 버스에 오르는데, 기사님이 뭐라고 말을 합니다. 언뜻 입모양을 보고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임을 알아챘습니다. 후다닥 이어폰을 빼고는 "네, 안녕하세요"라고 답했습니다.

미안하기도 했고, 그러면서 기분도 참 좋았습니다. 그저 인사를 받아서가 아닙니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그렇게 멋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분들과 이 세상을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 저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오늘 글을 보내주신 독자 김성한 씨도 그런 경험을 했던 모양입니다. '일전에 시내버스에서 일어난 아름다운 일을 보고 글 한 편 써봤습니다'라며 이메일을 보내왔습니다. 김성한 씨는 38년간 공직에 몸담다가 재작년 퇴직했다고 합니다. 지식경제공무원교육원 교수와 영주우체국장을 역임했고, 2008년엔 수필 부문으로 등단한 수필가이기도 합니다. 수필집 '민얼굴이 향내가 더 난다'를 펴냈고, 2010년 포항소재문학상과 공무원연금생활 체험수기 우수상도 받았다고 합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해피 버스데이

오늘 모처럼만에 바깥나들이를 했다. 은퇴 이후 '거안실업회장'(거실과 안방을 오가는 실업자)이라고 놀려대던 아내가 외출을 한다니 반색을 한다. 집에서 7, 8분 정도 걸리는 시내버스 정류장까지 걸어서 갔다.

직장에서 퇴직한 뒤부터 웬만한 거리는 뚜벅뚜벅 걸어다닌다. 정류소 나무의자에는 꼬부랑 할머니가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노파 옆의 커다란 짐 보따리도 함께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얼기설기 묶어놓은 보따리 속에는 초록색의 나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자기 몸 하나도 주체하기 어려우실 텐데 짐 보따리까지 저렇게 챙기시다니. 시지 아파트 입구 골목시장에 팔러 가는가? 아니면 시집간 딸내미 집에라도….

이윽고 버스가 도착했다. 등교하는 학생들이며 중년의 부인들이 우르르 차에 오른다. 차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중후한 남자 목소리가 들린다. "고객님, 어서 오십시오"라고. 깜짝 놀랐다. 처음엔 버스교통카드를 인식기에 갖다 대면 으레 나는 소리인 줄 알았다. 그런데 목소리가 달랐다. 카드인식기에서 울리는 낭랑하고 정제된 목소리가 아니었다.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 톤에다 가래 끓는 중년남자의 목소리이다. 차에 오르는 승객마다 일일이 인사를 한다. 고개까지 꾸벅이며 인사를 한다. 중학생이나 심지어 막내아들뻘 되는 초등학생들에게도 높임말로 인사를 한다. 직장에서 퇴직한 후 시내에 볼일이라도 있으면 버스를 자주 이용하는 편이지만, 이렇게 차에 오르는 승객에게 인사를 하는 건 처음 본다.

옛날 교통수단이 버스나 열차밖에 없었던 시절, 시내에라도 나갈라치면 버스를 이용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까운 거리도 거의 대부분 자가용을 이용한다. 그래서인지 요즘의 버스 승객은 연세 드신 노인이나, 나이 어린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돈이 궁한 층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시내버스를 타보면 무시당한다는 기분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차에 오르자마자 바로 출발해버려 하마터면 쓰러질 뻔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다르다. 보따리를 둘러멘 할머니가 좌석에 앉는 걸 보고서야 비로소 차가 움직인다. 차량 운행시간도 정해져 있을 텐데. 그러고 보니 얼굴 생김새도, 복장도 단정하다. 머리숱은 까맣게 염색을 하고 넥타이까지 매고 있다.

오르는 승객마다 "고객님, 어서 오십시오"라는 인사말에 모두들 얼떨떨한 표정이다. 자리에 앉는 승객들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승차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내리는 승객에게도 인사를 한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보따리 할머니가 내릴 채비를 한다. 차를 스르르 조심스럽게 세운다. 할머니를 모친이나 누나뻘 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배려하는 마음씨가 참으로 아름답다. 예의 "안녕히 가십시오"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번에는 할머니가 한마디하며 내린다. "기사님, 고맙심데이~."

뜬금없이 모 시인의 시(詩) '해피 버스데이'가 떠오른다. 생일날 자주 불렀던 '해피 버스데이 투 유!'도 귓전을 맴돈다. 그래, 맞아! 오늘은 행복(Happy)한 버스를 탄 날(day)이다.

김성한(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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