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치 파이브' 형제를 아시나요…이경필 장승포가축병원장

흥남 철수 마지막 배에서 출생… 김치 원·투…, 막내는 '파이브'

장승포로 피란온 후 어릴 적 카리스마(?) 넘치는
"모형이라 좀 실감이 안 납니다." '김치 파이브' 이경필 씨가 6'25전쟁 당시 자신이 태어난 배인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모형이 있는 거제도 포로수용소 공원 내에서 당시를 회상했다.
장승포로 피란온 후 어릴 적 카리스마(?) 넘치는 '김치 파이브' 모습
'김치 파이브' 이경필 씨가 가축병원에서 동물을 돌보고 있다.

"1950년 12월 25일 고귀한 한 생명이 1만4천여 명이 탄 배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름은 '김치 파이브'."

한국전쟁 때 생명의 기적이 탄생했다. 1950년 12월 23일, 중공군에 밀려 피란을 가야 했던 사람들은 흥남부두에서 마지막 배인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몸을 실었다. 고작해야 2천~3천여 명이 탈 수 있는 배였지만 부두로 온 모든 피란민을 싣고 거제도로 떠났다. 그 배에서 5명이 태어났다. 모두 크리스마스가 생일인 김치 형제들이다.

미군 선장은 복된 날 기적적으로 태어난 이들에게 애칭을 붙여줬다. 바로 첫째는 '김치 원', 둘째는 '김치 투', 이렇게 해서 막내는 '김치 파이브'. 이들 중 '김치 파이브'의 운명은 남달랐다.

거제시와 그는 만 61년이 지난 지금, 한국전쟁 때 피란민을 실어날랐던 배를 거제도로 가져오려 애를 쓰고 있다. '김치 파이브'는 이를 위해 이달 23일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워싱턴주 상원의원에게 협조를 구하고, 다음해에 개봉할 '오! 흥남'이라는 영화촬영도 함께할 계획이다.

피란민의 강한 생명력의 상징이 된 '김치 파이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로 볼 때, 그의 존재는 놀라운 운명적 애국자다. 아직도 건강하게 살아서 당시 한국전쟁의 참담함을 있는 그대로 알리고, 당시 전쟁통 속에 피어난 휴머니즘을 가슴속에 품고 살아가고 있다.

대구예술대 도용복 특임교수의 추천으로 인터뷰가 손쉽게 이뤄질 수 있었다. 61년 전 피란온 그 땅, 거제도 장승포에서 가축병원을 운영하며, 일상적 삶을 살고 있는 이경필(61'장승포가축병원 원장) 씨를 9일 찾아갔다. 그는 대구에서 찾아온 손님이라며, 마침 1997년 외환위기(IMF) 때 대구에서 거제로 온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황금고디탕)에서 점심까지 대접했다.

◆나라를 위한 운명, 그의 모든 삶

전쟁은 참 놀랍다. 영웅을 만들고, 비겁한 이들을 가려낸다. 숭고한 죽음도 있다. 믿기 힘든 기적들도 만들어낸다. 또 판단하기 힘든 난제도 양산한다. '김치 파이브'의 일생을 보면 그 단면이 드러난다.

1950년 12월, '김치 파이브'의 할머니는 숭고한 결단을 내린다. UN군과 국군이 중공군에 밀려 끝없이 퇴각하자, 아들과 만삭이 된 며느리에게 피란갈 것을 권한다. 그리고 자신은 '집을 지키겠노라'며 "보름이나 한 달 뒤에 보자"고 한 것이 마지막 말이었다.

이렇게 거제도 장승포에 정착한 그의 가족은 피란온 곳에서 평생을 살았다. 그의 아버지는 전쟁이 싫어서 그랬는지 평화사진관을 운영한 것을 비롯해 생업을 위해 하는 일이나 상호마다 '평화'라는 말을 앞에 달았다. 또 애국은 운명이었다. 세 살 터울인 그의 형 이군필 씨는 월남전에 참전했다 고엽제 후유증 때문에 고환암으로 수년 전 운명을 달리했다. 그의 맏아들 이정영(33) 씨는 파일럿(pilot)이다. 청주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올해 소령으로 진급한다. '김치 파이브'의 아들답게 공군에서도 그 역량을 한껏 발휘하고 있다. 딸이 귀한 집안인데 벌써 '김치 파이브'의 손녀도 보게 해 준 고마운 아들이다. 둘째 이정진(30) 씨는 아직 미혼이지만 사회생활을 잘 하고 있단다. 그의 아내도 기독교 단체(YWCA)에서 활동하며 활발한 사회봉사를 하고 있다.

전쟁 속 난제는 이랬다. 김백일이라는 우리 군의 장군은 당시 수만 명의 피란민을 살리기 위해 '국군은 죽더라도 걸어서 퇴각하겠다. 피란민을 먼저 배에 태워라'고 한, 이북에서 거제도로 내려온 10만 피란민들의 은인이자 영웅이었다. 하지만 이후 친일 논란으로 시민단체와 동상 건립을 두고 논란을 벌였고, 동상이 건립된 아직도 갑론을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일본 군관학교에서 공부했다는 것이 문제인데, 이런 문제를 떠나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피란민들을 먼저 생각한 그의 정신을 높이 사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남은 삶의 꿈, '평화공원 조성'

'김치 파이브'는 놀랍도록 건강했다. 회갑이 지나도록 살면서 단 두 번밖에 병원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 두 번이 뭐냐'고 물었더니, "한번은 배탈이고, 한번을 허리가 삐끗해서"라고 살짝 웃으며 답했다. 농락당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흐뭇했다. 피란민을 실어나른 배에서 태어나 이토록 건강하다니.

'김치 파이브'는 요즘 더 바쁘다. 뜻하지 않게 영화에도 출연하게 됐으며, 이달 말 미국 상원의원을 만나 그 당시 자신이 태어났던 배(이미 해체돼 없어짐) 대신 똑같은 임무를 수행하던 배를 거제도로 가져오기 위해 협조를 구할 예정이다. 미국과 협조가 잘 되면 당시 배가 도착했던 장승포에 실물의 그 배를 전시하고, 주변에 흥남 철수를 기리기 위한 평화공원(가칭)을 조성하는데 큰 역할을 할 생각이다. 이미 그 일은 시작됐다. 부지도 마련됐고, 공원 건립계획(국비 예산 포함)도 세워졌다.

'김치 파이브'의 삶은 사실 10여 년 전에 시작됐다. 그냥 피란 와서 이곳에서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누군가 그가 배에서 태어났으며, 당시 '김치 파이브'로 불렸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그리고 수년 전부터 그의 출생 스토리에 대해 언론이 조명을 했다. 누가 들어도 흥미로운 사실들이었고, 특히 6월 호국보훈의 달에는 그의 존재가 더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김치 파이브'의 존재는 최근에 제작한 군 홍보영상에도 들어갔다. 그는 "어느 날 공군에 있던 큰아들이 홍보영상을 보다 아버지가 등장하자 깜짝 놀라 전화를 했는데, 사실 머쓱하기도 했지만 스스로 자랑스러웠다"고 털어놨다.

'김치 파이브'는 안보에 관한 자원봉사 알리미 역할도 자처하고 있다. 이 씨는 지심도나 외도를 관광하기 위해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6'25나 흥남 철수에 대해 모르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는 또 "역사는 미화하면 안 되며,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라며 "그를 통해 당시의 어려움과 아픔을 되돌아보고, 교훈을 얻고자 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우태욱기자 w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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