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경기에서 한방을 쓰는 정현욱과 차우찬이 선배가 소개한 미용실에 같이 갔다. 차례가 되자 미용사가 정현욱에 다가와 서울말로 다정하게 물었다.
"어떤 스타일로 해드릴까요?"
한참을 뜸들이던 정현욱이 대답했다.
"저기 저 알아서…."
옆자리의 차우찬도 같은 질문을 받았다. 그의 대답도 마찬가지였다. "아 예 알아서…."
미용실을 나서며 파마머리를 한 정현욱이 학생처럼 짧게 커트한 차우찬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신기하게도 둘은 닮았다.
삼성 라이온즈에서 가장 숫기가 없으며 가장 멋을 부리지 않는 선수들이다.
운동화를 신고 청바지에 라운드티를 입었다면 그가 바로 차우찬이고 졍현욱도 캐쥬얼한 스타일로 치장하지 않는다. 과묵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야구밖에 모르는 스타일도 꼭 닮았다.
그리고 바로 그 닮은 점 때문에 그들은 한때 'white line fever'라는 병을 앓았다.
불펜에선 최고지만 정작 마운드에만 올라가면 기복이 심한 투수를 'white line fever'에 걸렸다고 한다.
페어지역과 파울지역의 경계인 흰 선만 넘어가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150㎞에 가까운 불같은 강속구와 폭포수 같은 커브를 지녔지만 정현욱은 입단하고도 12년이 지난 2008년도에야 빛을 보았다.
2008년 4월 27일 4년 만에 승리투수를 눈앞에 둔 그는 역전의 위기에서 롯데의 중심 타선을 상대하고 있었다.
31세의 나이로 더 물러설 곳이 없었던 정현욱은 해보자는 심정으로 정면 돌파를 택했다.
그러나 전력을 다한 투구는 포수의 머리 위로 향하고 있었다. 이대로 볼 판정을 받으면 밀어내기가 될 판이었다. 그 순간 타자의 배트가 헛돌아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정면 돌파는 그에게 강한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그날의 승리 이후 삼성의 기둥 투수로 거듭날 수 있었다.
입단 4년차인 차우찬에게도 잘 던지다가도 한순간 흔들리는 고질병이 있었다. 볼카운트나 위기상황을 인식하면 위축되어 투구의 밸런스가 무너져버리는 것이었다. 이미 같은 경험을 가져본 정현욱은 무엇이 문제인가를 알아차렸다. 사실 스프링캠프에서나 불펜에서 차우찬의 볼은 정말 탐날 정도로 좋았다. 외출을 삼가는 터라 늘 같이 방에만 붙어 있으니 자연이 대화가 많아졌다.
"참 이상하네. 타자는 네 볼을 치기 어렵다는데 넌 타자를 어려워하니…."
권오준도 가세했다.
"네 볼은 무거워서 타자가 쳐도 멀리 안 나간다고. 네 볼은 대포알이야 대포알."
반신반의하던 차우찬은 지난해 6월 최고 타자가 즐비한 두산을 상대로 쳐보라는 마음으로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그날 비록 패전을 기록했지만 자신이 투구가 통하고 있다는 강한 자신감이 몸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솟구쳐 올랐다. 비로소 무너지지 않는 밸런스를 찾은 것이다. 역발상이 전환점이 되어 이후 차우찬은 10연승을 기록하며 제1선발의 자리를 찾았다. 차우찬의 적은 바로 자기자신이었던 것이다.
최종문 대구방송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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