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규리의 시와 함께] 달빛

깊은 밤, 달빛이 나를 어디론가 끌고 간다.

멀리 따스하게 깜빡이는

불빛 몇 점,

하지만 아직은 저 마을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언젠가 잠속에 깊이 빠져 있었을 때,

침실로 다시 돌아와 보면

꿈속의 풍경들이 까마득하게 지워져 있듯,

언젠가 마음 아파 그 아픔이 하염없었을 때,

내 생애가 다만 하나의 점으로 떠서

작아질대로 작아진 한 톨 불씨가 되어 있듯,

내 마음은 여전히 적멸궁寂滅宮이다.

깊은 밤, 달빛에 젖고 또 젖어 걸으면

몇 점, 마을의 저 따스한 불빛이

차라리 아프다. 환하게 아픈 그림 같다.

이태수

 

망월사에 가서 달을 보았어요. 하늘에 뜬 달, 호수에 뜬 달, 찻잔에 뜬 달, 네 눈에 뜬 달, 추워질 때까지 앉았다가 이렇게 달 네 개를 보고 나왔어요. 달이 등뼈 같은 길을 비추는 밤, 달빛이 나를 끌고 가고 있었어요. 맞아요 시인처럼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어요.

하염없지요. 날마다 비워내도 슬픔은 바닥 없는 샘같이 고여요. 나 지금 아프다 아무에게도 말할 곳이 없어요. 적멸궁寂滅宮이에요. 송두리째 들이켜며 바닥을 짚었을 때 거기 물컹 피할 수 없는 내가 닿아요.

생애가 아픈 한 점, 저 마을의 불빛 한 점. "나무에서 나오는 길은 나무를 통하는 길밖에 없다"는 프랑시스 퐁주의 말을 기억하며 망월사에서 담아온 네 개의 달을 하나씩 버려요. 미련과 집착과 참혹과 그리움이라는 달을. 그래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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