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부조금

보통 부조금(扶助金)이라고 하면 조의금(弔意金)과 축의금(祝儀金)을 통칭해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예로부터 부조는 돈에 국한되지 않았다. 길사나 흉사를 포함해 목돈이 들어가는 행사 때면 이웃이나 친척끼리 십시일반으로 돈이나 음식, 노동력 등을 보태 일을 잘 치르도록 돕는 우리의 오랜 전통이었다. 오늘날의 부조는 우리 민족의 상부상조, 아름다운 풍습에서 비롯됐다.

청나라 사상가 캉유웨이는 우리의 이 부조 문화를 보고 "조선인이 갖고 있는 뜨거운 마음의 표시"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우리 민족 특유의 끈끈한 정과, 베풀고 갚지 않으면 못 배기는 염치와 의리의 불문율이 바로 부조 문화라고 극찬한 것이다.

바야흐로 결혼의 계절이다. 여기저기서 결혼 소식이 잇따라 들려온다. 오랜 사랑의 결실을 맺는 커플들로선 행복에 겨운 계절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직장인들은 '부조금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계절이다. 이름 하여 '월급 도둑'이라는 말까지 생겨났을 정도니 그 부담이 크긴 큰가 보다.

돌, 결혼, 환갑, 장례, 대'소사 때마다 하얀 봉투에 넣어 전하는 '부조'는 주위의 기쁨을 함께 나누자는 마음에서 출발했지만, 어느새 압박감으로 다가와 그 본래의 취지를 흐려놓는 일이 빈번하다. 마치 출석 체크하듯 부조금 봉투를 내밀고는 밥값이라도 건지자는 생각으로 허겁지겁 밥만 먹고 오는 일이 부지기수다.

기쁨은 기쁨대로, 슬픔은 슬픔대로, 돌, 결혼, 환갑, 장례와 같이 일생의 매듭이라고 불리는 중심에 우리의 부조 문화가 자리한다는 것은 곱씹어 볼수록 의미 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들수록 한편으로 걱정도 든다. 과연 우리가 부조의 본래 정신을 올바로 이어가고 있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오늘날 부조 문화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 본래의 의미가 퇴색하고 점점 변질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른바 우리는 '부조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다. 단적인 예로, 과거에는 자신의 사정에 따라 성심 성의껏 다양한 방법으로 부조를 했지만 언제부턴가 오로지 돈으로만 대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1회 경조사비로 5만원을 낸다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가령 지난 5월처럼 일주일에 한 번씩 결혼식 청첩장이 날아드는 달이면 그 부담감은 만만치 않다. 혹시 우리는 체면 때문에 분에 넘치는 부조금을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낸 만큼 돌려받겠다는 생각으로 무리하게 부조에 매달리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특히 일부 사람들은 마치 결혼식과 장례식을 사회적 위치의 척도쯤으로 여기고 지나치게 호화롭고 극성스럽게 치른다. 이러다 보니 부조마저 본래 순수한 정신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체면과 과시욕이 결합되어 마치 세금고지서처럼 부담스런 존재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 싶은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가능한 소박하게 치른다면 부조의 본래 목적도 자연스럽게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캉유웨이가 부러워했던 우리 민족 특유의 정신과 미풍양속을 살려내기 위해서는 주고받는 사람 모두가 변해야 한다. 허례허식을 벗어던지고 본래 부조의 정신으로 돌아가자! 서로를 돕는다는 따뜻한 마음에서 다시 출발한다면 거기에 해답이 있다.

최중근 구미탑정형외과연합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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