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환경오염 아무리 심각해도 미군이 아니라면 아니다?

불합리한 SOFA 규정

최근 불거진 칠곡 왜관 캠프 캐럴 미군기지 고엽제 매립 의혹으로 SOFA 개정에 대한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주한 미군의 계속되는 환경오염 범죄에 대해 적극적으로 피해방지와 오염실태조사, 배상 등을 요구할 수 있는 구체적 조항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태형기자 thkim@msnet.co.kr
최근 불거진 칠곡 왜관 캠프 캐럴 미군기지 고엽제 매립 의혹으로 SOFA 개정에 대한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주한 미군의 계속되는 환경오염 범죄에 대해 적극적으로 피해방지와 오염실태조사, 배상 등을 요구할 수 있는 구체적 조항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태형기자 thkim@msnet.co.kr

2000년 2월 서울 용산 미군기지 영안실. 앨버트 맥팔랜드 부소장은 군무원을 시켜 시체 방부처리용 포르말린 470병을 싱크대에 버렸다. 영화 '괴물'의 소재가 됐던 '한강 포르말린 방류 사건'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지금, 경북 칠곡군 왜관읍 캠프 캐럴에서 1978년 고엽제 250드럼을 땅에 묻었다는 전직 미군 병사의 충격적 증언이 나오면서 주민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 만약 포르말린으로 인해 한강에 '괴물'이 출현할 정도라면, 이번에 밝혀진 고엽제 사건은 괴물 수백 마리가 튀어나오고도 남을 정도의 강한 독성 성분으로 파장이 더 크다.

하지만 미군은 경악한 주민들의 심정에는 아랑곳없이 사건 조사를 차일피일 미룰 뿐만 아니라 형식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의 불합리성 때문에 우리 국민은 피해를 입고도 뭐라고 항의조차 못하는 형국이다. 미군 관련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런 억울한 상황은 늘 반복돼 왔다. 이 때문에 이번에야말로 SOFA의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반쪽짜리 환경조항, 실효성 없어

현재 시행되고 있는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은 1966년 처음 만들어졌다. 그리고 지난 45년 동안 두 차례 부분적인 개정이 있었을 뿐이다. 1991년 이뤄진 1차 개정에서는 매년 증가하고 있는 주한 미군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재판 관할권의 포기 등으로 인해 재판권을 원천적으로 행사하지 못하게 되어 있던 부분을 일부 수정했다. 그리고 2000년 이뤄진 2차 개정에서는 환경과 미군에 고용된 한국인 노무자 권리 개선에 대한 내용이 새롭게 포함됐다.

하지만 당시 추가된 '환경' 관련 조항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명목상의 조항일 뿐이었다. 현재 고엽제 문제를 조사 중인 한미공동조사단은 SOFA 협정에 따라 캠프 캐럴에 고엽제가 묻혀 있는지와 오염도를 조사한 뒤 결과보고서를 SOFA 환경분과위원회에 제출하면, 이를 토대로 오염 치유를 위한 방안과 비용 부담 등을 협의하도록 돼있다.

하지만 여기까지의 과정은 꽤나 길고 험난할 전망이다. 환경 정보공유접근절차 조항에 따르면 "언론에 공개되는 모든 정보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기 전 한미 SOFA 합동위원회 환경분과위원회의 한미 양측 공동위원장의 공동 승인을 거쳐야 한다"고 돼 있다. 이 때문에 현재 관할지자체인 경상북도는 수질에 대한 분석 결과를 이미 오래전 받아들었지만 묵묵부답하고 있을 뿐이다. 캠프 캐럴의 고엽제와 관련한 모든 정보가 제대로 공개될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더구나 피해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에도 미군이 과연 얼마나 성실하게 책임지려 할지도 알 수 없다. 환경양해각서, 환경 정보공유 접근절차 부속서A에는 "주한 미군에 의해 야기되는 환경오염이 인간의 건강에 KISE(Known, Imminent and Substantial Endangerment'공지의,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을 초래하는)일 경우 주한 미군이 환경오염을 정화한다"고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KISE인 경우에만 공동조사 후 원상회복하며, 오염 정도가 KISE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주한 미군 사령관이 판단한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주민들의 피해 보상 절차도 마찬가지다. SOFA 규정 자체가 피해 주민들이 미군을 상대로 직접 소송을 제기할 수 없도록 돼 있기 때문에 피해주민들은 한국 정부를 대상으로 보상을 요구해야 하며, 한국정부는 배상금을 우선 지급한 뒤 추후 미군에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도록 돼 있다.

◆SOFA 개정까지 지속적 관심 필요

우려는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주한 미군이 화학물질을 땅에 묻었으며, 캠프 캐럴의 환경오염을 뒷받침하는 관련 문서들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고 있음에도 주한 미군은 침묵으로만 일관하고 있다. '공동조사' 역시 우리 측 주장을 무시한 일방통행으로 갖은 잡음을 만들어내고 있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자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SOFA 개정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3일 있었던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SOFA 개정 주장과 관련 "필요하면 개정하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소파 규정 중 미흡한 부분을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12일에는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김동철 의원(민주당)이 12일 SOFA 개정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대표발의했다. 김 의원은 결의안에서 ▷군 기지의 각종 환경오염에 대한 정부의 철저한 진상 규명과 주한 미군의 적극적 협조 ▷주한 미군이 주둔지에 반입'반출하는 독성화학물질에 관한 정보를 한국 정부에 정기적으로 제공할 것 ▷정부가 SOFA 개정 협상을 개시해 미군 환경 범죄에 대한 처벌 의무조항을 명시할 것 등을 촉구했다. 발의안에는 김 의원 외에 민주당 의원 17명이 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경북대 이정태 교수(정치학과)는 "감정적으로 몰아붙일 일이 아니라 차근차근 국내외 조항을 검토하고 준비해서 실효성 있는 개정을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 SOFA처럼 "상대국의 환경법규를 준수(observe)한다"가 아니라 2000년 개정된 SOFA는 4조에서 "미국 정부는 (중략) 협정을 이행할 것을 공약하고 한국 정부의 관련 환경법령 및 기준을 존중(respect)하는 정책을 확인한다"고만 규정하고 있어 미군 측의 의지에 모든 것이 결정되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 전 국민의 경악을 불러일으켰던 캠프 캐럴 고엽제 문제는 2주일이 지나면서 벌써 관심 밖으로 멀어지고 있다. 반값 등록금 등 새로운 이슈들에 밀려 더 이상 언론에서조차 이를 외면하고 있는 상황인 것.

이에 대해 대구경북진보연대 김선우 집행위원장은 "현재 조사가 진행되는 경과를 봐서는 미군 측에 대해서는 전혀 의지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조사가 완료되고 SOFA 개정까지 이뤄내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국민적 관심과 지지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처음에는 앞다퉈 SOFA 개정을 주장했던 정치권에서도 목소리가 점점 잦아들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

김 위원장은 "정부도 미군 측도 현재 반미감정 확산을 명분으로 들면서 가급적 문제를 키우지 않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지금 이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오히려 반미감정이 더욱 확산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이번 기회만큼은 면피성으로 대충 넘어갈 일이 아니라 분명한 SOFA 개정을 이뤄내야 하기에 국민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SOFA란?

Status of Forces Agreement in Korea. 정식명칭은 '대한민국과 아메리카합중국 간의 상호 방위조약 제4조에 의한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에서의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이다. 이 협정은 전문 31조로 된 본문과 합의의사록, 합의양해사항, 교환서한 등 3개 부속문서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과 미국은 1996년 9월 외무부에서 SOFA 개정을 위한 7차 협상을 벌였으나 미국 측이 미국 피의자에 대한 강력한 법적 보호장치를 계속 요구함에 따라 타협을 보지 못한 채 협상을 마친 바 있다. 그러나 매향리 폭격장과 한강 독극물 방류 사건, 여중생 장갑차 사건 등을 계기로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를 비롯한 시민단체와 종교계가 불평등한 SOFA 조항을 전면 개정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주요 조항으로는 형사관할권 조항과 관련 ①적용대상에서 군속과 가족 제외 ②한국 측의 재판포기 조항 삭제 ③미군 피의자 신병인도 시기를 공소시점으로 조정 ④미군 피의자에 대한 지나친 특혜 폐지 ⑤공무의 최종 판단을 한국법원에 일임할 것 등을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료:불평등한SOFA개정국민행동'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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