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행복미술] 리처드 롱 작-'Dusty Boots Line Sahara'(1988)

도보라고 하면 과거 여행자나 순례자를 떠오르게도 하는데 롱은 이 걷기를 주제로 예술을 한다. 롱은 고향인 영국의 시골에서 작업하면서 간혹 멀리 떨어진 캐나다, 몽골, 볼리비아의 평원들처럼 여기저기로 간다.

대지예술가로 불리는 롱의 작업은 지면에 최소한의 표시를 하는 정도로 단순한 자취를 남겨 어떤 장소의 원래 모습에 약간의 변화를 준다. '사하라를 걷다' 또는 '사하라의 흙 묻은 신발 길' 정도로 풀이할 수 있는 이 작품처럼 그의 보행이 사진 속에 기록된다. 걸으면서 만난 여러 가지 일들을 문자로 게시하는 방식도 있다. 이를테면 '오솔길-강-별-안개-새벽-황혼, 동물의 자취-샘-야영지-돌무더기, 새소리-꽃-구름-물-바람, 산마루-지평선-만월-낯선 이의 친절' 등과 같은 단어들의 열거다.

이처럼 그의 작품 형식들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데 맞춰져 있다. 그가 이런 작업을 시작한 것이 1960년대 중반이었는데, 비슷한 시기의 개념미술, 미니멀, 행위예술들과 무관하지 않다. 그 무렵 예술의 언어와 목표가 너무 보수적이고 자연과 단절됐다고 느꼈던 작가는 오직 걷기에 의해서만, 또는 여기저기에 덧없는 자취들을 남김으로써만 예술작품을 하는 것이 자신의 자유라고 말했다.

김영동(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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