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13남매의 '3,640일'

"책에도 재앙이 있다(書之有厄)… 책이란 것은 옛날과 지금의 훌륭한 보배이다(書者古今之絶寶)… 우리나라 경우 책의 재앙이 대략 10가지 정도 있었다… 첫째는 당나라 이적(李勣)이 고구려를 평정하고 평양에 전적(典籍)을 모아두고 불태운 것이고, 두 번째는 신라말 견훤이 완산에 있을 때 삼국의 남은 책을 모아두었다 패하면서 불타 재(灰燼)가 된 것이고…."

조선 후기 학자로 북학파 이덕무의 손자인 이규경(李圭景:1788~?)은 백과사전류의 책인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책의 소중함과 보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비슷한 시기의 유학자이자 성호 이익의 제자로, 다산 정약용과 6년 동안이나 성균관 기숙사 생활을 같이했던 윤기(1741~1826)도 '반중잡영'(泮中雜詠)이란 책을 통해 220수(首)의 시로 성균관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남겨 조선 선비들의 애환을 그림 보듯 되돌아볼 수 있게 했다. 그는 책을 짓게 된 사연을 설명하면서 "부족하나마 스스로 옛 현인들께서 지난 세월을 회상하면서 오늘의 현실에 마음 아파하던 뜻을 빌려 후인들이 (지나간 역사의) 근원을 천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대비하고자 할 따름"이라고 해 기록의 소중함을 밝히고 있다.

우리 선조들은 일찍부터 기록의 소중함을 깨달아 많은 책과 자료를 남겼지만 이규경의 지적처럼 잦은 외침(外侵)에 따른 전화(戰禍)와 약탈(掠奪)로 많은 기록들을 잃곤 했다. 무려 1천 번 가까운 크고 작은 외세의 침략을 받았으니 기록의 소중함을 더욱더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선조들은 개인 문집을 비롯해 각종 기록들을 많이 남겼다.

오늘날 인쇄 활자에 대한 기피 현상으로 책을 가까이하는 사람들이 크게 줄었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책과 인쇄 기록의 중요성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구미에 사는 국내 최다둥이인 13남매(5남 8녀)의 어머니인 엄계숙(48) 씨가 26권의 육아일기를 바탕으로 펴낸 '빨간 지붕집 와글와글 13남매 이야기'란 작은 제목이 붙은 '사랑해 행복해 고마워'란 책은 나름 의미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아이를 꺼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13남매를 낳느라 '3천640일' 동안 '내 몸에 다른 생명을 넣고 살았던 날들'의 이야기는 소중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하나같이 소중한 열세 명의 아이들을 기르면서 겪었던 다양한 일들에 대한 경험담이기 때문이다.

정인열 중부지역본부장 oxe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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