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이달 3일 청와대 회동을 앞두고 내년 4월의 총선 공천 원칙에 합의했다는 소문은 두 진영의 적극적인 부인에 불구하고 불길이 전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대구경북 의원들에게 큰 타격
정치권 특히 이번 '공천 원칙'에 적용돼 대거 탈락할 것으로 지목된 영남권 현역 의원들의 마음은 17일 하루 종일 불편했다. 청와대와 박 전 대표 측의 강력한 부인에도 '3대 공천원칙'이라고 알려진 내용이 공개적으로는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울 정도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보편적인 사항을 담고 있어서 속앓이를 했다고 하는 의원들이 많다. 일각에서는 한나라당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총선과 대선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정답이라고도 하니 드러내놓고 반발하기도 어렵다.
3대 원칙이란 ▷기존의 친이와 친박 비율에 구애받지 않고 ▷따로 공천자를 추천하지 않고 처음부터 당 공식기구에서 함께 협의하고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공정한 시스템을 통해 공천자를 정한다 등이다. 문제는 이를 그대로 적용할 경우 화살은 신공항 추진 무산과 과학비즈니스벨트 선정 불발 이후 공격의 표적이 돼온 영남권 현역 국회의원들에게 집중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또한 현역 의원 교체 주장이 친이나 친박의 구분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친박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영남권의 인적 분포 특성상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최근 대구경북지역 한나라당 주변에서 '내년 총선에서 아무도 안심할 수 없다. 15대 총선 당시 2석만 겨우 건졌던 악몽이 되살아날 수 있다'는 그럴듯한 이야기까지 나도는 상황에서 이 '공천원칙'으로 의원들이 받은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각종 통로를 통해 '친박계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물갈이가 되지 않을 경우 영남권은 물론 서울과 수도권의 참패로 이어져 전체 총선을 망치는 것은 물론 박 전 대표의 대권 행보에도 차질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각종 전망도 불에 기름을 얹는 격이었다. 지역의 한나라당 관계자는 "현재 민심을 볼 때 대구'경북에서 현역 의원을 대거 바꾸지 않고선 내년 대선에서 표를 달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박 전 대표의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박 전 대표는 이를 들은 적이 없다"고 즉각 부인을 한 것도 자파의 동요를 인지한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청와대의 고위 관계자는 이날 하루 종일 보도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어느 누구도 그런 일을 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누가 살아남나?
그럼에도 이러저러한 정보를 종합해 볼 때 여권 내부에서 이 '공천원칙'과 비슷한 논의가 있었다는 게 정설이다. 물갈이와 전략공천의 이야기가 이날 부쩍 한나라당 의원들 주변에서 많이 이야기된 것도 전반적인 기류가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영남권을 중심으로 한 현역 국회의원들의 물갈이가 불가피하다는 이야기가 돌아다닌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나서 이를 주도하는 모양새는 잘못이라는 지적도 많다. 또 다른 당내 갈등을 유발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친박계 3선인 이한구 의원(대구 수성갑)은 "원론적으로 누가 거기에 반대하겠느냐"면서도 "치명적인 약점은 공천권을 마치 청와대와 박 전 대표가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바닥에 깔고 있다는 점인데 그런 식으로 국민들에게 비쳐지는 것은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 전 대표의 독주를 막으려는 정몽준 전 대표는 "의원들에게 계파에 줄을 서라고 협박하는 행위"라며 맹비난했다. 이재오 특임장관 측도 "총선 공천은 당 지도부의 몫인 만큼 대통령이나 박 전 대표가 관여한다면 밀실공천"이라고 주장했다. 친박계인 4선의 박종근 의원(대구 달서갑)은 "전국이 같은 기준이어야지 지역별로 다른 기준을 정해 교체하겠다는 것은 자의적인 판단"이라며 "수도권과 영남권을 각각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는 것은 비합리적이고 비개혁적"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어쨌든 현재의 청와대와 여권, 바닥 민심을 볼 때 대구'경북 한나라당 의원들의 물갈이는 상당 부분 불가피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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