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화에 패러글라이더'우주선? "한국화 편견을 깨라"

갤러리분도 박병춘전 '낯선, 어느, 산수풍경'

박병춘 작
박병춘 작 '길이 있는 풍경'

중국의 고서화는 수백억원대에 거래되면서 그 가치를 재조명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한국화는 아직 이렇다 할 재발견도, 전망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박병춘은 스스로 "내 위로는 고전, 나로부터 현대 한국화의 시작"이라고 자신에 찬 발언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판에 박힌 한국화에 대한 편견을 그는 통쾌하게 깨어버린다. '라면발'처럼 잔잔한 필획으로 한국의 산수를 장쾌하게 그려낸다.

그는 10년 전부터 '우리다운 것'에 천착해 지금의 화풍을 일구어냈다. 그가 먹으로 한지에 그리는 풍경은 장소성이 아닌, 자연 너머 이 시대를 읽는 언어다.

"동양화와 서양화에 대한 모든 지식을 버리고, 화첩과 붓을 들고 들판으로 나갔어요. 자연에서 끊임없이 필법을 연구하고 새로운 표현을 시도했죠. 서예, 전각 등을 배우며 나만의 선을 만들었습니다."

작가는 한국화를 고전에서 끌고 나와 현대와 만남을 주선한다. 민화의 새와 글라이더가 한 화면에서 평화롭게 노닐고 있는 것이 그 예다.

그의 그림에는 낯선 풍경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먹빛 가득한 화면에는 형형색색의 패러글라이더가 하늘을 날고 있다. 때로는 우주선이 날고 있고, 강변에는 노란 소파가 놓여 있다.

특히 대작의 경우, 절벽에 시대를 새겼다. 영월의 '한반도의 지형'이라는 곳을 그린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가 살아온 2006년 당시 현재성이 담겨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가 선거 유세를 하고 있고, 그의 아들은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다. 당시 방문했던 결혼식장의 풍경도 절벽 사이에 그려져 있다. 마치 숨은 그림 찾기처럼 그의 그림에는 재미있는 풍경이 숨어 있다. 평범한 산 풍경에도 자세히 보면 춘화(春畵)가 숨어 있다. 인간과 자연이 서로 어루만지는 조화를 상징한다.

"상상력을 자극한다고 할까요. 소파는 명상을 의도하고 우체통은 좋은 소식을 의미하죠. 패러글라이더를 통해 풍경을 적극적으로 즐기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바람의 흐름을 담아낼 수도 있는 소재이고요."

그는 모든 풍경을 직접 들판으로 나가서 그린다. 정신세계를 화폭에 옮겼던 고전과는 다르다. 그래서 사진으로 미처 담지 못하는 묘한 대지의 분위기와 여운이 감돈다. 자연과의 교감과 작가의 이야기가 어우러져 새로운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특이한 것은 시점. 그는 세 번에 걸쳐 움직이며 스케치를 한다.

"동양화에는 걸으면서 자연을 관찰하는 시점이 있어요. 그처럼 저는 움직이며 정면을 그립니다. 그래서 원근감이 없고 시점이 독특하죠."

그의 그림은 '한국화'를 넘어 '현대 회화'로 읽히고 있다. 그에게 현대의 한국화란 어떤 그림일까.

"한국화는 한지 안에 붓의 놀림에 의해 전혀 새로운 공간이 펼쳐지는 장르입니다. 한지와 붓의 필선이라는 전통적인 재료에 현시대의 이야기가 더해져 오늘날 한국화가 나오는 게 아닐까요?"

박병춘의 전시 '낯선, 어떤, 산수풍경'전은 7월 16일까지 갤러리 분도에서 열린다. 053)426-5615.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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