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洛

洛(락)은 한 여인의 이름이다. 洛은 그 이름처럼 낙동강 상류에 있는 안동 내앞(川前) 마을에서 사대부가의 막내딸로 태어나 곱게 자랐다. 열여섯 나이에 퇴계 가문의 후손에게 시집을 간 洛의 다복한 삶이 고난의 여정으로 뒤바뀐 것은 대한제국의 국운이 쇠락하면서다.

을미의병 당시 시아버지 향산 이만도가 예안 의병장을 맡고 온 집안 식구가 가담하면서부터 심산하고 불안한 가슴이었다. 그런데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시아버지는 24일간 단식 끝에 자정순국했다. 상복 자락에 눈물도 마르기 전에 큰오빠(백하 김대락)와 친정 식구들, 그리고 큰 형부(석주 이상룡)와 가족들이 만주로 집단 망명했다. 남편(이중업)도 독립운동(파리장서사건)에 투신했다가 세상을 떠났고, 두 아들과 두 사위마저 항일전선에 나섰다.

洛은 스스로도 안동에서 벌어진 3'1만세 시위에 적극 가담했다가 일경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하며 두 눈을 잃었다. 그리고 10여 년 후 죽는 그날까지 앞 못 보는 상황 속에서도 남편과 자식을 비롯한 친인척들의 항일투쟁을 뒷바라지했다.

그렇게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이름 없이 묻힌 洛을 찾아내 독립유공자로 이름을 올린 사람은 김희곤 안동독립운동기념관장이다. 김 관장이 일본 경찰의 극비 자료인 고등경찰요사(高等警察要史)에서 洛의 아들인 이동흠의 항변 기록을 발견한 것이다. 이를 근거로 洛은 2001년 8월 15일 안동의 여성 독립운동가 '김락'(金洛)으로 거듭났다.

향산 이만도 선생과 그의 며느리 김락 여사의 숭고한 항일투쟁기를 담은 뮤지컬 '락'은 독립운동의 성지 안동의 정신을 웅변하는 작품으로 감동의 서사시이다. 나라를 위해 3대에 걸쳐 목숨과 재산을 내놓은 한 명문가의 항일 투쟁기 그 이상이다.

올해는 안동의 선비들이 만주의 독립군 기지 건설을 위해 집단으로 망명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외세의 국권 침탈에 죽음으로 저항하고, 빛을 잃어버린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독립만세를 외치는 뮤지컬 '락'.

洛이 독립운동가로 거듭난 올 8'15 광복절을 맞아 그 무대를 국회 의사당에서 펼치고 온 국민이 지켜볼 수 있다면 가슴 벅찬 일일 것이다. 그것은 민족의 딸이자 아내요 어머니인 洛의 '나라를 아느냐'란 물음에 우리가 화답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의무일 것 같아서다.

조향래 북부본부장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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