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21일 취임 4개월 만에 첫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일부 정치권에서 일고 있는 감세 철회 움직임에 반대한다"며 "재원이 많아야 고용 창출과 투자를 많이 하게 되고 그것이 세계적인 추세"라고 말했다. 그는 또 "반값 등록금 등 정책들은 면밀한 검토 없이 즉흥적으로 나온 것"이라며 "선거를 앞두고 쏟아지고 있는 포퓰리즘성 정책에 대해서는 재계 의견을 제대로 내겠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최근 추가 감세 철회 쪽으로 방향을 정한 데 대해 재계 대표로서 입장을 밝힌 것이지만 그의 발언은 즉각 후폭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나라당의 남경필 의원은 "자기 기업과 가족만 위하는 이기적인 태도가 보수 전체를 위기로 몰고 가고 있다"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같은 당의 정태근 의원도 "포퓰리즘을 얘기하기 전에 무차별적인 시장 마키아벨리즘이 얼마나 해악을 끼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며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 기술 및 인력 탈취, 불공정 하도급 거래 강요 등이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아 규제를 강화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이용섭 대변인은 "재벌 총수가 아직도 정글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인 것은 참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GS그룹의 회장이기도 한 허 회장은 재계의 점잖은 신사로 알려져 있다. 그가 어려운 자리인 전경련 회장직을 맡아 오랜만에 재계의 입장을 나타냈으나 그 내용은 실망스럽다. 그의 발언에 대해 공감하는 이들도 있겠으나 비판받을 부분이 적지 않다. 특히 재벌 대기업들이 고속 성장을 질주하면서 심각한 양극화의 현실을 외면한다는 지적은 따끔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감세 정책은 계속되어야 하고 반값 등록금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그의 인식은 이기적일 뿐 아니라 안이한 현실 진단을 드러낸 것이어서 우려스럽다.
반값 등록금이나 복지 정책이 면밀한 검토 없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은 수긍할 부분이 있다. 그러나 그런 정책이 나오게 된 배경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과중한 대학 등록금 부담과 대학 졸업 후 취업이 되지 않아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 비정규직 근로자가 넘쳐나고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어려움에 허덕이고 있다. 잘나가는 대기업의 한편에 양극화가 극심하게 진행되면서 우리 사회에 분노가 커져가고 있는 현실이다. '분노의 바람'은 우리나라에 앞서 영국, 스페인 등 유럽 국가들에도 불고 있다. 기업 감세 등으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가 세계적인 추세가 아니라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폐해에 대한 반작용이 세계적 추세인 것이다.
대기업들이 현실 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데에 대해 이해가 가는 점도 있다. 과거 지주들이 토지 개혁과 6'25전쟁 등을 겪으면서 피해를 당한 부분이 있고 기업들이 정권에 휘둘리며 어렵게 기업을 운영해온 경험이 외풍에 대한 피해의식과 방어심리를 형성시켰을 것이다. 오늘날 대기업들이 눈부시게 성장해 일류의 길을 가고 있으면서도 전근대적인 기업 운영과 기업 문화가 남아 있어 이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과거의 경험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대기업들이 그러한 인식에서 벗어나 부의 재분배와 사회적 책임에 눈을 돌려야 할 때다. 어려움도 있었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육성책과 근로자들의 헌신이라는 혜택을 입어 성장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뛰어난 창의력과 탐욕스런 경영으로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지만 성숙한 부자가 되어 부의 사회 환원에 나서는 빌 게이츠는 부와 존경을 동시에 얻었다. 혁신적인 발상으로 기업의 발전을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와 일치시키는 재일교포 사업가 손정의 같은 이들도 있다. 이들은 부의 재분배와 사회적 책임의식이 사회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키며 자신들의 부와 자본주의를 지키는 길임을 잘 알고 실천하고 있다. 국내 대기업들과 기업주들도 자신들의 이익 지키기에만 골몰하지 말고 사회적 요구에 대해 고민하고 부응하는 자세를 갖출 필요가 있다. '통 큰 제품'만 만들 것이 아니라 기업주들의 통이 커져야 한다. 경주 최부자처럼 우리나라에도 존경받는 기업들과 부자들이 많아질 때 사회가 안정되고 더 나은 발전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金知奭(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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