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하는 것 아니에요. 저 안의 또 다른 진구랍니다."
눈빛이 강렬하다. 빠져들 것만 같다. 화면에 등장하는 그를 보면 몰입하지 않을 수 없다. 관객을 끌어당기는 이유는 그가 연기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카메라 앞에서 자신 안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여러 가지 모습을 꺼내 보인다. 배우 진구(31)다.
연기자가 연기를 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이러니하게 들린다. 하지만 그의 연기가 현실감 가득하고 진심으로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진구는 "한 번도 어떤 배역에 들어가고 나와 본 적이 없다"며 "내 안의 인물을 꺼내 보여드리는 거다. 이제까지 영화나 드라마에서 거짓을 연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본을 받고 10번이고 100번이고 반복해 읽어 내려간다. 극중 분량이 많든 적든 똑같다. "제가 나오는 10개 장면이 있으면 대본을 한 번 봤을 때 2개만 이해돼요. 이해가 안 되는 8개를 위해 자료조사를 하거나 감독님과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 저 안의 저를 꺼내 완벽한 하나의 인물을 완성하죠."
영화 '마더', '혈투' 등에서 보여준 모습만 보면 평상시에도 진구는 진중한 모습에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할 것만 같다. 하지만 5분 정도만 이야기를 해도 그가 밝고 재밌는 성격임을 알 수 있다. 술자리에서 '몰래카메라' 놀이를 하는 등 장난을 좋아하는 편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는 것은 덤이다.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유쾌한 말솜씨를 보이기도 했다.
진구는 "배우 입장에서 진지한 모습과 밝고 재밌는 모습 등 여러 가지 면이 있는 게 좋은 것 같다"며 "한 가지 모습으로만 보이면 배우로서 운신의 폭이 좁아 보인다"고 말했다. 물론 "공인이니 밖에서 영화 속 인물의 성격이나 행동을 함부로 하면 큰일이 난다"고 웃는다.
진구는 최근 개봉한 '모비딕'(감독 박인제)에서 사건의 열쇠를 쥔 양심선언자 '윤혁'을 맡았다. 1990년대를 배경으로 서울 근교 발암교에서 발생한 의문의 폭발 사건이 정부 위의 세력에 의해 은폐되고 조작됐다는 사실을 파헤치기 위해 나서는 사회부 기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다.
물론 사회부 특별취재팀에 비해 비중이나 대사는 턱없이 적다. 하지만 그는 "윤혁이 없으면 이 영화는 진행될 수 없다"며 "축구로 치면 1분 나와서 1골 넣고, 어시스트 1개까지 성공해 득점 포인트를 2점 올리는 최고의 선수"라고 비유했다.
"그동안 해왔던 인물이 아니라 뭔가 비밀을 가진 이중적인 인물이니 임팩트를 주면 좋겠다고 생각해 도전했어요. 그런 모습을 관객에 보여주면 좋을 것 같았거든요. 윤혁인 진구는 자기가 할 만한 모든 것을 다했습니다."(웃음)
진구는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했다고 하면서도 100% 만족하진 않았다. 자신이 나온 장면들이 일부 편집돼서는 절대 아니다. 뭔지 모를 아쉬움과 부족함 때문이다. '모비딕'에서 부족하고 아쉬운 게 무엇인지 찾으려고 해도 지금은 찾을 수 없다.
"영화가 개봉되고 나중에 DVD로 제가 했던 영화를 다시 보면 버릇이나 발성, 몸동작이 보여요. 지금 데뷔 즈음에 했던 작품을 보면 부끄럽고 손발이 오그라들기도 해요. 그래도 그 역할들로 인해 지금 현장에 서 있는 저에 대한 믿음과 용기가 생겼으니 좋아요."
정말 단순하고 원론적이지만 무척 궁금한 것 하나를 물었다. 배우 진구가 연기 잘하는 비결은 뭘까. "그냥 그렇게 생겨먹었나보다"라는 건조한 답이 돌아왔다.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저는 의도한 게 연약한 모습이었는데 그 연약함 뒤에 뭔가 꿍꿍이가 숨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대요. 사람들이 그렇게 바라보도록 하는 게 제 최고 장점인 것 같아요. 이 장점을 발전시키고 끌어내려고 했지만 안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어요. 의도하는 순간 그 장점이 깨질 것만 같거든요."(웃음)
그는 현실적인 감각도 중시한다. '모비딕'에서 거대 세력에 잡히지 않기 위해 전력질주하며 유리문을 깨고 도망치고, 화장실 세면대 위로 고꾸라지는 장면에서처럼. 그는 "사자한테 쫓기는 톰슨가젤처럼 자동으로 나오는 것"이라며 "톰슨가젤이 초식동물인데 뛰는 모습을 보면 죽기살기다. 극중 윤혁도 당연히 잡히면 죽게 되니 살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몰입했다.
진구는 8월 2일부터 막을 올리는 '아가씨와 건달들'로 뮤지컬 무대에 도전한다. 1929년 뉴욕을 배경으로 가장 멋지고 매력 있는 아가씨와 건달들의 사랑과 승부, 인생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이야기다. 1983년 극단 민중'대중'광장의 합동 공연으로 초연한 후 2005년까지 22년간 16번 리바이벌 무대를 통해 200만 관객의 사랑을 받은 뮤지컬이다.
진구는 "사실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어서 처음에 부담과 걱정이 컸다"며 "발성이나 노래, 춤 등 아무것도 준비가 돼 있지 않아서 못하겠다고 거절했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연출가 및 관계자들의 열정으로 결국 출연을 결정했다. 그는 2개월 동안 부딪히고 깨져 자신만의 색깔을 무대 위에서 보여줄 것이라고 웃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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