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2일은 비단 문학인들에게만 슬픈 날이 아니었다. 병마와 투병 중이던 박완서 작가의 타계 소식이 있었던 날이었기 때문이다. '나목',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자전거 도둑', '그 여자네 집' 등 섬세하고 현실적인 감각이 돋보이면서, 따뜻하고 감수성 어린 작품들로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고 박완서(朴婉緖) 작가. 한국 문학계의 큰별이 지던 그 날, 동료 문인들과 애독자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그녀의 타계 소식을 접하고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 박완서 작가의 장례식에는 조금 남다른 면이 있었다.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 중 부의금을 내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던 것. 바로 장례식장 입구에 붙은 '부의금을 정중히 사양합니다'라는 문구 때문이었다. 이 무슨 영문인가 싶지만, 사실 여기에는 고인의 세심한 배려가 담겨 있었다.
창작, 특히 문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경우, 저명한 사람들을 제외한 대부분은 경제 사정이 그리 넉넉하지 못하다. 고도의 정신노동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안정된 보수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작가이기 때문이다.
박완서 작가의 지인들 또한 대다수가 가난한 생활을 하는 문인들이 많았다. 이를 배려해 그녀는 평소에 '나의 장례식에서는 부의금을 받지 말라'고 가족들에게 당부했었고, 마침내 고인의 소중한 뜻을 유가족들이 지키게 된 것이다.
아름다운 사람은 떠나는 뒷모습마저도 아름다운 것일까. 평생 동안 주옥같은 글들로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박완서 작가. 그는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감동을 선물해주고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이 있는 곳으로 영원한 여행을 떠났다.
박완서는 1931년 10월 20일 경기도 개풍에서 출생하였으며, 숙명여고를 졸업하고 1950년 서울대 국문학과에 입학하였으나 한국전쟁으로 중퇴하였다. 그 후 결혼을 하여 전업주부로 묻혀 지내다가, 1970년 그녀의 나이 마흔이 되던 해에 여성동아 여류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면서 문인으로 등단하였다.
그의 작품세계는 중년여성 특유의 유려한 문체와 섬세하고 현실적인 감각이 뛰어나며, 치밀한 심리 묘사와 능청스러운 익살, 삶에 대한 애착이 어우러져 더욱 빛을 발한다. 이러한 작품성은 그의 성격과 무관하지가 않다.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 그녀의 이름을 보면, 중성적인 음운을 사용하는 식신격인 이름이다. 식신(食神)은 그 성격이 심미적이고 호기심이 많으며, 예능적인 소질이 다분하여 화가, 음악인, 작가, 연예인 같은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
옛날에는 여성의 사주(四柱)에서 식신이 강하면 재주는 있으나 고집이 세고 남자 복이 없다하여 기피하였으나, 명예보단 재물을 선호하는 현시대에는 식신이 사주에 없으면 이름에라도 조금은 있어야 인기도 있고 윤택한 삶을 사는데 도움이 된다.
그가 중년의 나이에 작가로서 문단에 등단한 것이 식신이 강한 이름의 성격도 있겠으나, 여고시절 담임이었던 소설가 박노갑 선생님의 영향을 받았으리라 짐작된다. 그의 유작이 되어버린 에세이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처럼 살아서는 가볼 수 없는 길을 떠났다. "신이 나를 솎아낼 때까지 이승에서 사랑받고 싶다"던 그가 흑백 사진 속에 아름다운 미소만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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