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라가 궁금해요. 필리핀을 오래 기억할 수 있는 예쁜 기념품을 사다드릴 거예요."
23일 오후 김천에서 만난 동민(김천 운곡초 5년'여)이는 들떠 있었다. 사흘 밤만 자고 나면 엄마 나라인 필리핀으로 4박5일간의 여행을 떠나기 때문이다. 아빠는 외동딸인 동민이가 세 살 무렵, 엄마와 함께 딱 한 번 외갓집에 다녀왔다고 하는데, 동민이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후 아빠는 농사일로, 엄마는 공장 일 때문에 필리핀 방문은 꿈도 꾸지 못했다. 지구본을 손가락으로 짚어보면 한국에서 한 뼘도 안되는 필리핀. 그 땅을 자신의 눈으로 보고 온다는 생각에 자꾸 설렌다. 동민이는 "박물관과 학교, 농장, 계곡을 견학한대요. 다녀오면 엄마하고 할 얘기가 많을 것 같아요"라며 수줍게 웃음지었다.
경산에 사는 보경(경산 남천초 6년'여)이의 마음은 벌써부터 중국에 가 있다. 보경이의 어머니 김선자(37) 씨는 베이징 인근에서 태어나고 자란 조선족 출신이다. 보경이는 "반 친구들이 다들 부러워해요. 돌아올 때 꼭 기념품을 사달라고 졸라요. 엄마는 중국에 가서 많은 걸 구경하고 오래요. 그게 다 저의 재산이 될 거라고 하셨어요." 베트남 어머니를 둔 장현(안동 풍서초 4년)이는 "베트남이 여기보다 더 더울지 궁금하다"며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라 더 즐거울 것 같다"고 씩씩하게 말했다.
동민이와 같은 경북의 다문화가정 초교생 95명이 27일 '어머니의 나라'인 필리핀, 중국, 베트남 등 3개국으로 문화체험 여행을 떠난다.
이번 여행은 경상북도교육청이 올해 처음 기획한 '부모나라 문화 탐방 사업'이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어머니의 나라에 가지 못하는 지역 다문화 가정 초'중학생들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27일 1차로 95명, 8월 말 2차로 120여 명의 학생들이 모국을 방문할 계획이다.
도 교육청은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모국 탐방을 통해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나라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로 3억원을 들여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경북의 다문화가정 초'중'고교생은 현재 3천1명. 2006년 569명에 비해 5배 이상 급속하게 늘었다.
1차 모국방문단은 27일 부산 김해공항을 통해 중국(40명), 필리핀(36명), 베트남(19명)으로 떠난다. 중국에서는 3박 4일 일정으로 자금성, 이화원, 만리장성, 용경협 등을 둘러보고 인력거 체험, 북경기예공연 관람 등 중국 문화를 체험한다. 필리핀 마닐라로 가는 학생들은 4박 5일간 국립박물관, 산티아고 요새, 리잘 공원 등을 둘러보고 필리핀 특유의 대중교통 수단인 '지프니' 체험, 팍상한 계곡 카누 체험을 한다. 베트남에선 3박 5일간 호찌민, 구찌, 빈저우 등을 돌아보면서 정글 탐사, 우마차와 악어 낚시 체험 등을 즐긴다. 각 나라마다 현지 초등학교를 방문,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기념품도 전달하고 우정을 나눌 예정이다.
설레기는 부모들도 마찬가지다. 농부인 동민이 아버지 위성훈(51) 씨와 어머니 가를로 릴리아(48) 씨는 "짧은 일정이지만 동민이가 필리핀을 보고 느끼면서 필리핀을 사랑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여행을 다녀온 뒤 아이와 함께 앉아 여행얘기를 나눌 생각을 하니 벌써 설렌다"고 고마워했다.
도 교육청은 이번 모국방문단 성과를 검토한 후 참여 학생 확대와 현지 교육기관 연계 등 내실있는 프로그램을 수립한다. 이영우 경북도교육감은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사회 편견에 따른 심리적 압박감을 이겨내고 우리 사회의 인재로 자라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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