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창석의 뉴스 갈라보기] 나는 다리를 놓는 사람입니다

이미 예측 보도가 충분히 있었지만 22일에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연임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은 우리를 기쁘게 했다. 그날 현지 시각으로 오후 3시에 개최된 총회에서 의장이 반 총장의 재선 안건을 공식 상정하자 192개 전 회원국 대표들이 만장일치로 이를 통과시켰다. 그의 '겸손한 리더십'에 공감한 5개 지역 그룹 대표들의 지지 연설이 있었고, 이에 반 총장이 유엔헌장 원본에 손을 얹으며 "국제 평화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선서하는 광경을 우리는 안방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이어진 수락 연설에서 반기문 총장은 "이제 세계는 통합과 상호 연결의 시대에 접어들었으며, 어떤 나라도 혼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모든 나라가 해결책의 일부가 되어야만 하는 새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으로 '신다자주의'(renewed multilateralism)를 재확인하며, 자신은 거기에 '다리를 놓는 사람'이 되겠다고 천명했다.

물론 국제 간의 분쟁 해결과 평화 존속이라는 유엔 기구의 특성상 수장으로서 의례적인 취임 인사로도 들리지만, 요즘 세계는 이전보다 더 분명하게 '신다자주의'라는 개념을 활발한 어젠다로 정착시키는 듯하다.

 '신다자주의'는 과거 서방 선진 7개국(G7) 모임이나 각 지역의 경제블록을 뛰어넘어 보다 광범위한 국가들이 참여하여 기후변화에 대한 대처, 에너지와 물의 부족, 식량 위기, 취약 국가의 안정화 등의 문제를 유연하게 해결해 나가자는 개념이다. 자국이나 소수국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나라에 해를 끼치는 경제 민족주의나 과거의 편협한 다자주의로는 점차 위태로워지는 지구 환경을 개선할 길이 없어 보인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의 전환은 과거 이삼십 년 동안 개인의 욕구가 집단적 소망보다 우선시되었던 '소비(消費) 사회'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 그야말로 '소비 천국'이 아니었던가. 소비는 경제 활성화만이 아니라 개인에 대해서도 자아실현의 존재론적 가치마저 안겨주는 판이었다. 소비에 대한 정보는 어떤 얘기보다 귀를 솔깃하게 했다. 땀 흘려 일하는 창업자, 개척자의 전기(傳記)보다 '소비 영웅'들의 이야기가 매스컴을 채웠다. 영화 스타, 스포츠 스타, 돈 많은 왕자와 몇몇 세계의 군주들이 과시하는 '대낭비가'들의 모습을 선망했다. 이 같은 소비 욕망은 사람들에게 자산보다 지출을 더 늘리게 했고, 이윽고 국가 경제를 휘청거리게 했다. "이제 자동차를 부수세요. 그 뒤는 보험이 책임집니다."(장 보드리야르)

이런 소비는 국가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무한정한 이산화탄소의 배출, 배타적인 지역 경제블록, 저금리 정책 등으로 자국의 소비력에 위험스런 날개를 달았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지구의 기후적 환경문제와 저개발국가의 빈곤문제, 인권문제 등을 직간접적으로 야기하게 되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기문 총장은 국가 간의 상호 협력과 선진국의 책임 공유가 "과거 어느 때보다 다르고 심오한 방식으로" 거론되어야 한다고 피력한 것이다.

유연한 포괄적 상호 협력이라는 '신다자주의'는 비단 국제사회의 방식만이 아닌 것 같다. 한 국가 내에서도 동일한 상호 협력과 책임의 공유가 요구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국제사회만큼은 아니더라도 현재 우리나라 안에서도 지역과 계층 간에 상대적 빈곤과 불균형이 뚜렷이 존재한다. 특히 최근 몇 달 사이에는 지역 불균형에 대한 불만이 크게 확산되었다. 경제성장의 절대량이 늘어나면 결국 부(富)가 각 지역마다 골고루 나누어진다는 단순한 논리는 어느덧 경제구조의 왜곡을 은폐하는 요령이 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도 그런 것이, 폭풍처럼 솟구치던 하나의 사건이 마무리되면 어느새 지역 균형 발전 논의는 뒷전으로 물러앉는다. 수도권 중심주의는 조금도 후퇴할 기미가 없다. 물론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기도 하다. 심지어 한나라당의 7'4전당대회가 코앞에 다가왔지만 지역 출신 출마자를 제외하면 한 사람의 당권 도전자도 지역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는다. 집권당조차 그러하니 할 말을 잃게 한다.

지금 세계는 다자 간의 협력 시대로 접어들기를 소망한다. 세계만이 아니라 한 국가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책임의 공유와 상호협력은 21세기의 새로운 어젠다임에 틀림없다.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지역과 계층 간의 다리를 놓는 역할을 자임해야 할 것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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