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예술 창작 현장을 찾아서] 2)대구시립극단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연습

연극배우가 무용·노래에 무술 액션까지…"무대는 땀의 결과물"

배우들은 연습인데도 진지함을 잊지 않는다. 배우 김효숙 씨의 눈빛이 강렬하다.
배우들은 연습인데도 진지함을 잊지 않는다. 배우 김효숙 씨의 눈빛이 강렬하다.
결투 신을 펼치는 이경민 씨의 표정이 실제 결투를 연상시킨다.
결투 신을 펼치는 이경민 씨의 표정이 실제 결투를 연상시킨다.
로미오와 줄리엣 역을 맡은 이상범 씨와 권민지 씨가 애정 신을 연습하고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 역을 맡은 이상범 씨와 권민지 씨가 애정 신을 연습하고 있다.
배우 강석호 씨(왼쪽에서 세 번째)는 대결 신을 연습하다 눈을 다쳐 안대를 쓰고 있다.
배우 강석호 씨(왼쪽에서 세 번째)는 대결 신을 연습하다 눈을 다쳐 안대를 쓰고 있다.

17일 오후 2시 대구문화예술회관 내 대구시립극단 연습실. 25일까지 대구 두류공원 코오롱야외음악당에서 공연되는 액션 판타지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연습이 한창이다. 이번 작품은 대구시립극단의 정기 공연물이면서도 처음으로 '제5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에 공식 초청돼 문화계의 관심이 뜨겁다. 기자가 찾았을 때는 작품의 두 주인공 로미오와 줄리엣이 서로 첫눈에 반해 사랑을 표현하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른바 그 유명한 '발코니 신'이다.

관객의 눈과 귀, 마음까지 즐겁게 하는 무대예술. 하지만 이면에는 예술인들의 피나는 집념과 노력이 스며 있다. 그런 모습을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장소가 연습실이다. 공연을 얼마 앞두지 않은 가운데 대구시립극단 연습실에서의 배우들의 뜨거운 호흡을 옆에서 지켜봤다.

◆공연보다 더 생생한 연습 현장

로미오와 줄리엣의 애정 장면이 끝나자 잠시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하지만 쉬는 시간에도 배우들은 쉴 틈이 없다. 안무가가 곧바로 배우들에게 뛰어가 조금 전 했던 안무의 문제점을 이것저것 조언하고 있다. 보통 동선이나 액팅에 꼬인 부분을 수정하자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

이번 공연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각각 연기하는 배우 이상범 씨와 권민지 씨는 아무래도 부담감이 크다. 신인으로 주연 역을 맡았기 때문. 권 씨는 "요즘 집에 들어가면 다른 생각할 틈이 없다. 기운이 다 빠져 잠이 잘 온다"며 웃었다. 대구시립극단 제작기획 이완기 씨는 "연습 중에 육두문자도 나오고 호통도 수시로 나온다. 여자배우들은 이 때문에 눈물을 많이 훔친다"고 귀띔했다. 특히 권 씨는 연기가 낯설어 지적도 많이 받은데다 자신에 대한 불만과 서러움이 쌓여 거의 매일 울었다고 한다. 말하기가 무섭게 이국희 예술감독의 호통이 떨어진다. "자, 빨리빨리 합시다. 진도가 잘 안 나가네요."

연습이 재개됐다. 이내 배우들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캐릭터 복장만 입지 않았을 뿐 배우들의 연기는 마치 공연에서의 연기처럼 느껴진다. 배우들은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된 듯 주위를 신경 쓰지 않고 대사를 막 토해낸다. 감독과 안무가들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이들을 세세히 지켜본다.

연습실 한쪽에서는 무예 연습이 한창이다. 배우들이 대결 신을 연습하는데 눈빛이 마치 칼을 뚫을 듯 강렬하다. 눈빛만큼이나 배우들의 투혼도 빛났다. 배우 김경선 씨는 얼마 전 대상포진에 걸렸음에도 진통제의 힘을 빌려 연습에 열중하고 있고 배우 강석호 씨는 격렬하게 대결 신을 연습하다 눈을 다쳐 안대를 끼고 있다. 강 씨는 "연습 중에 너무 몰입하다 보니 감정이 격해져 가끔 불상사가 생긴 것"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특히 이번 공연은 액션 뮤지컬인 만큼 검술과 무술 장면이 많다. 이 때문에 무술 연습이 연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액션에 익숙지 않은 여배우들은 어느 공연보다 힘들었다고 입을 모은다. 처음에는 칼 자체를 휘두르지 못했다는 것. 무술과 결투 신을 위해 우슈 국가대표 출신 무술감독을 초빙해 2개월 동안 맹연습을 했다고 한다. 배우 김효숙 씨는 "남자 배우들보다 에너지가 많이 부족하아보니 무술하는 것이 무척 힘들다"고 털어놨다. 김경선 씨는 "가벼워 보이는 죽도인데도 계속 휘둘러야 하니까 무게가 상당하다"고 했다. 경선 씨는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자신의 팔 근육을 보여줬다.

이 감독은 테이블에 앉아 배우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이 감독은 "전체 장면 구성과 무용 삽입, 무대 세트 등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미리 그려본다고 머릿속이 복잡다"며 넋두리를 한다. 테이블 위에는 장면 구분표가 놓여 있다. 표를 펴놓고 노래와 영상 등을 구상하고 직접 관객이 돼 관객들의 의향도 점쳐본다는 것이다. 인터뷰 와중에도 펜을 잡고 쉴 새 없이 무언가를 적는다. 연습 중에는 배우들의 리듬이 깨어질까 봐 바로 지적하지 않고 쉬는 시간에 정리해서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이 감독은 이번 작품에 대한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연극이 전문인 대구시립극단에서 뮤지컬을 한다는 것이 녹록지 않기 때문. 뮤지컬은 노래와 연기, 무용이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기존 연극배우로는 이를 모두 소화시키지 못한다. 대구에서는 이를 겸비한 배우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것이다. 이 감독은 "하루빨리 대구에서도 뮤지컬 배우들을 키울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습은 실전처럼

대구시립극단은 공연 하나를 올리기 위한 기획단계가 일반적으로 공연 6개월 전부터 이뤄지고 제작단계는 3개월 전부터 시작된다. 제작이 시작될 때 배우들의 전체 미팅이 진행된다. 배우들은 대본을 받고 처음 일주일간은 아무 감정 없이 '드라이'하게 읽는다. 그러고 나서 서서히 감정을 넣어 대본을 읽게 된다고 한다.

무대는 블록으로 설정한다. 배우들은 블록 간에 움직이는데 감독이 일일이 배우들에게 동선을 지시하면서 조언을 해준다. 그러고 보니 연습실 바닥에 별도로 검은색 테이프가 붙여져 있다. 테이프를 통해 가상의 블록을 설정해 놓은 것이다. 안무는 안무가가 장면마다 시범을 보이면 배우들이 따라한다. 이때 박자까지 다 짚어서 세세하게 연습한다. 처음 나온 대본은 연습이 계속 진행되면서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다. 일반적으로 처음 대본에 나온 내용에서 30% 정도 보완돼 무대에 올려진다.

배우들의 연습량은 엄청나다. 최근까지만 해도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연습을 했단다. 그렇다 보니 대구시립극단 배우면 대구에 내로라 하는 대표 선수급인데도 '연습벌레'라는 소리를 듣는다. 배우들은 하루에 2, 3차례 같은 장면을 반복 연습한다. 이완기 씨는 "공연 때까지는 같은 장면을 100회 이상 연습한다. 이 때문에 대사나 노래, 안무 등을 굳이 외우지 않아도 자연스레 몸에 밴다"고 했다. 연극이라는 장르 자체가 현장 예술 성격이 강해 캐릭터를 자기화하는 과정을 계속 반복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렇다고 설렁설렁하는 법이 없다. 10분만 연습해도 이마에 땀이 송송 맺힐 만큼 집중한다.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말이 절로 떠오르는 것. 이번 작품에서 염총관과 약방영감 역을 맡은 원로배우 홍문종 씨는 누구보다 연습의 중요성을 몸소 느끼고 있다. 지금까지 160여 편의 작품을 해온 그에게 연습은 또 하나의 일상이다. 특히 이번 작품은 춤과 노래가 들어가기 때문에 더욱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홍 씨는 "같은 장면을 계속 반복하다 보니 때로는 지겨울 때도 있고 쉬엄쉬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공연 때까지 긴장의 끈은 늦추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무대 공연은 땀의 결과물이라는 것. 연습을 조금만 게을리하면 공연 때 곧바로 드러나기 때문에 배우들 스스로 연습에 매진할 수밖에 없다.

보이지 않은 곳에서 땀을 쏟아내는 배우들에게 관객은 구세주와 같다. 배우들은 관객의 몫이 가장 중요하다고 합창했다. 객석에 관객이 채워져야 비로소 배우들은 배우로서 살아난다는 것. 아무리 좋은 공연이라도 관객이 없으면 2%가 부족해진다. 연습에서도 드러난다. 아무리 실전처럼 연습한다 하더라도 배우들이 무의식적으로 의욕이 덜 생기는 것이 사실이라는 것. "공연을 끝내고 심신이 지칠 때로 지쳐도 관객들의 박수 소리만 들으면 피로가 싹 풀리는 것이 배우이고 그것이 배우가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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