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행복을 요리하는 의사] 호스피스 제대로 알리기

글 쓰는 일은 어렵다. 남의 글을 읽다가 어설프고 부끄러운 일을 시작한 것은 단지 호스피스 때문이었다. '행복을 요리하는 의사' 원고 마감일에는 반찬도 부실해지고, 집안 살림도 엉망이다. 그날은 내가 생각해도 저녁식탁이 부실했다. 반찬가게에서 사온 어묵 반찬, 그리고 연일 올라온 물김치뿐이었다. 말없이 잘 참던 대학생 아들이 드디어 불평을 드러냈다.

"죽음이 아직은 먼 일반인들이 왜 호스피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모르겠어. 의사 선생님한테 엄마의 이론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빠르지 않을까? 죽음이 다가오면 엄마가 글에서 말하는 것처럼 의사 선생님들이 그렇게 해주시면 되잖아. 나는 왠지 엄마가 글을 쓴다는 명예욕 때문에 우리 가정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뜨끔했다. 보잘것없는 글이 아닐까 늘 고민했었는데, 아들은 간파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툰 글솜씨를 비난하는 아들에게 왜 글을 계속 쓰는지를 설명했다.

일본 호스피스 의사가 쓴 '병원에서 죽는다는 것'이란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어느 대학병원에 여성 암환자가 입원해 있었다. 그녀는 말기 유방암 환자였고 늘 심한 통증을 호소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진통제 주사를 요구했다. 병원 측은 그녀를 그저 성가신 물건 처리하듯 다른 병원으로 보냈다. 하지만 오히려 그녀에게는 행운이었다. 왜냐하면 그 병원에는 말기 암환자도 여느 환자와 똑같이 간호해주는 간호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여전히 통증을 호소하고 진통제 주사를 요구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간호사가 진통제 주사 대신 한잔의 뜨거운 커피를 들고 갔다. 간호사는 커피를 권하며 환자의 이런저런 호소를 진심으로 들어주었다. 그 다음 날부터 그녀가 통증을 호소하는 일이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진통제 사용도 격감되었다.'

나도 그런 경험을 했다. 항공 조종사로 퇴직하신 분(63세)이 통증이 심해 입원했다. 뼈로 전이된 말기 폐암환자. 그는 오해 때문에 마약성 진통제를 거부했다. 그의 상냥한 부인과 나는 환자의 발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회진을 했다. 어디가 가장 아픈지, 그리고 식사는 왜 잘 못하는지 등등 사소한 것을 물었다. 투병생활 동안 긴긴 밤을 어떻게 지내셨는지, 또 그런 힘든 상황을 견디신 당신이 존경스럽다는 이야기까지 오갔을 때 그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미소를 띠고 있었다.

서툰 글 때문에 부끄러워지기도 하고, 매스컴에 살짝 알려짐으로써 사생활이 불편해짐에도 불구하고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그저 알리는 것이다. '고혈압에는 소금이 적(敵)이므로 싱겁게 먹자'를 홍보하듯이 호스피스를 제대로 알리는 것이다. 내일은 맛있는 것 좀 해먹자며 엄마를 이해해주는 아들 녀석 덕분에 행복했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 센터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