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서울에서 파견 근무차 대구에 와 살던 이가 "대구는 물가가 싸서 살기에 참 좋다"고 한 말이 떠오른다. 금융기관의 중견 간부였던 그는 대구 물가가 서울 물가에 비해 낮은 점을 매우 좋아했다. 그는 대구의 고급 식당에서 제공되는 국내산 한우 1인분 가격이 2만 5천 원으로 서울의 절반 정도에 그치는 등 물가가 전반적으로 싸며 사교육의 질이 우수하면서 비싸지 않은 점도 좋은 점으로 꼽았다.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요즘, 대구든 서울이든 살기는 만만찮다. 물가가 상대적으로 비싼 서울이 더 힘들 수 있겠지만 높은 임금의 일자리가 많은 서울과 그렇지 못한 대구의 실정을 비교하면 지역 간 물가 차이가 삶의 어려움을 많이 덜어주는 것도 아닐 게다. 하지만 서울 사람들이 여름철 별미인 냉면을 최고 1만 원을 내고 사먹어야 하며 점심 식사값을 줄이기 위해 다른 직장의 구내식당에 가서 줄을 선다고 하니 보통 일이 아니다. 대구에서도 외식을 줄이고 점심 도시락을 싸는 직장인들이 많아지고 있는 현상은 서울 사람들의 고물가 대처 요령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가가 비싼 것도 힘든데 불공정한 행위로 물가가 올라간다면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한 농심의 '신라면 블랙'이 대표적이다. 농심이 '우골보양식' '프리미엄 제품'이라며 대대적인 광고와 판촉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 제품은 한국소비자원의 조사 결과 영양 성분이 부풀려졌으며 가격을 기존 라면의 3배 가까이 책정, 소비자를 우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치즈 제품의 가격을 담합한 서울우유, 매일유업, 남양유업, 동원데어리푸드도 공정위에 적발됐다. 이 회사들은 가격 차이로 인해 매출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수차례 가격 담합 행위를 했으며 2009년 이후 치즈 원재료 가격이 하락했는데도 치즈 제품 가격을 내리지 않았다. 공정위는 4개 업체에 대해 총 106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오만하고 부도덕한 기업의 제품에 대해 안 사먹으면 그만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물가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그대로 보아 넘길 수 없다. 분노한 소비자들이 기업들이 하던 대로 담합해 불매 행위라도 벌여야 할 판이다. 공정위는 감시망을 확대, 다른 '불공정 물가' 조사에도 나서 국민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줄여야 할 것이다.
김지석 논설위원 jise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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