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신성인 순심고 2년 하재의 군, 낙동강 왜관철교 '호국의 다리' 인명 피해 막다

◇ 살신성인 고교생 하재의 군, 낙동강 왜관철교 '호국의 다리' 인명 피해 막다

살신성인 고교생 하재의 군이 6.25에 무너져 국민의 억장도 무너져내리게 만든 낙동강 왜관철교 '호국의 다리' 인명피해를 막은 것으로 알려져 훈훈한 감동을 전하고 있다.

열일곱살 하재의(고교 2년) 군이 옛 왜관철교이던 '호국의 다리' 일부 구간이 무너져 내린 것을 본 것은 6.25가 터진 시각과 비슷한 지난 25일 새벽 4시경. 그 시각 호국의 다리 곁을 지나던 하재의 군은 112에 신고 전화를 했다. 호국의 다리 2번 교각과 상판이 붕괴된 지 10분쯤 지난 시각이었다.

하 군은 "다리가 무너졌다"며 최초로 112신고를 하고, 이곳을 지키며 '호국의 다리'로 향하는 사람에게는 휴대폰 불빛을 흔들며 신호를 했다. 이 시각, 하재의 군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약목파출소와 왜관파출소로 급출동, 곧바로 다리 양쪽을 차단하고 주민 통행을 막아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낙동강 공사를 하면서 무너져버린 구 왜관철교 '호국의 다리'에서 빚어질 뻔한 대형 인명사고가 열일곱 고교 2년생 하재의 군의 신속한 신고와 이를 신고받은 약목파출소와 왜관파출소의 급출동 합작으로 미연에 방지되어 큰 참사로 이어지는 것을 막은 것으로 밝혀져 감동을 주고 있다.

하군은 친구를 만나기 위해 25일 오전 3시께 다리를 건너다가 교량 상판이 휘고 기울기 시작하는 것을 때마침 목격하였다. 놀란 하 군은 서둘러 다리를 빠져나왔다.

친구집에 들러서 잠깐 정신을 추스른 하 군은 다시 '호국의 다리'를 현장을 찾아갔다. 교각과 상판, 다리 상부의 철골구조물(트러스트) 등이 무너져 강물에 잠긴 것을 눈으로 보았다. 하 군은 오전 4시11분 휴대전화로 경찰에 신고를 했다. 경찰에 신고를 한 후에도 하 군은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현장을 지키며 다른 주민이 다리를 이용하지 않도록 고함을 지르고, 소지하고 있던 휴대폰 불빛으로 수신호를 보냈다.

자칫하면 자전거를 탄 아저씨를 비롯해 여러 사람이 '호국의 다리'를 지나갈 뻔 했다. 어둠속에 무너져 내린 '호국의 다리'가 입벌리고 있는 참사를 하재의 군의 적극적인 시민정신과 실천행동으로 막은 것이다. "(호국의) 다리가 부서져 경찰이 오고 있으니 건너지 마시라"는 하 군의 만류로 인명피해는 막을 수 있었고, 이어 경찰이 도착해서 일대를 바리케이트로 막고 본격적으로 통행을 금지 시켰다.

호국의 다리가 무너져내린 줄 모르고 일상적으로 무심코 건너려다 떨어져죽을지 모르는 일을 떠올리고, 신고하고, 현장을 지키며 아저씨들의 통행을 막고, 경찰이 오도록 기다린 성숙한 하재의 군의 시민정신이 호국의 다리와 함께 무너져내린 대한민국 국민의 마음을 추스려주었다.

하 군은 "오래된 다리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황당하고 믿을 수 없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무너져내린 호국의 다리 주변은 칠흑같은 암흑 천지였다. 다리 붕괴로 인해서 전기 공급이 끊겨 가로등이 나간데다 아직 해가 뜨기 한참 전인 새벽 4시 전후 칠흑같이 어두운 시각이어서 하 군의 적극적인 행동이 없었다면 얼마든지 추가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하군의 신속한 신고 덕분에 인명 피해가 전혀 없어서 불행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호국의 다리는 1905년 건립돼 1950년 8월 6.25전쟁 때 북한군 남하를 막으려던 미군에 의해 교량 일부가 폭파됐으며 파손구간을 연결해 1993년부터 보행 전용도로로 이용돼 하루 수백명이 이용하고 있다. 호국의 다리를 복구하려면 앞으로 수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메아리로 불어난 강물이 빠지고 나면 안전진단 및 현장조사를 실시한 뒤, 복구될 것으로 보이는 호국의 다리는 등록문화재여서 문화재청과 협의해서 복구해아하는 절차가 남아있다. 호국의 다리 복구까지는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최미화 기자 magohalm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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