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거칠고 원시적인 무서운 세계!
나는 그런 세계 속에서 아름답게 날카롭게 빛나는 비눗방울 속에 있는 것처럼 살고 있다.
그리고 그 비눗방울이 깨지지 않도록 숨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한스 카롯사의 루마니아의 일기 중에서
장마가 시작되어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 태풍을 동반하여 바람까지 신나게 불고 있다. 비가 오면 채마밭에 물을 주지 않아도 된다. 봄에 심은 채소들이 잘 자라고 있다. 여름식탁을 풍성하게 할 이 아름다운 채소 중에 토마토는 푸른 잎과 줄기 사이로 작고 큰 열매들을 탐스럽게 열고 있다. 총총히 심은 고추는 열매가 이미 여러 개씩 열려 이 싱싱한 것을 따서 된장에 찍어 먹으면 여름철 입맛이 되살아난다. 밥 한 공기에 채소들만이라도 고기 반찬 못지않게 훌륭한 식탁이 된다.
화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이러한 채소 농사를 곁들여 그림 농사를 한다. 예술가라고 일반 사람들과 사는 게 특별히 다른 게 없다.
가끔 그림을 팔기도 하고 강의도 해야 하고 급할 때는 노동도 해야 한다. 후원 모임이 생겨서 조금이나마 지원금을 받으면 큰 행운이고 개인 전시를 통하거나 단체전을 통해서 그림이 팔리면 생활비와 함께 재료를 사거나 후배들에게 가끔 술을 살 수도 있다. 그리고 다음 전시를 준비하기 위한 경비를 마련해 두는 것이다. 백남준 선생은 말했다. '작가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로 먹고살며 미술사에 남고 싶다'고. 화랑, 컬렉터, 예술가 그리고 미술관 이러한 시스템이 잘 돌아간다면 모르겠으나 경제가 어려운 곳에서는 후원 조직이 필요하다.
100년 전 프랑스 파리에서는 곰의 가죽이라는 그룹이 있었다. 이 그룹의 리더는 친척이나 친구들을 모아서 일종의 계 조직처럼 만들어 미술품에 투자하게 한다. 그 시절에 활동한 대표적인 작가는 마티스, 피카소, 루오 등인데 지금은 미술사에서 대가의 반열에 오른 작가들이지만 그 시절에는 무명작가도 있었고, 중견작가였지만 작품 활동이 어려웠을 것이다. 이 작가들의 그림을 사서 모으기 시작하였고 특히 피카소 그림이 많이 선택됐다. 물론 내부의 반대도 있었겠지만 리더의 그림 보는 안목을 믿어 꾸준히 컬렉션하여 십 년 후 모은 그림을 되팔아 엄청난 이익을 얻는다. 그 중 이익금의 20%를 화가들에게 되돌려 준다. 이것은 프랑스 예술품의 판매에 대한 법으로 지금까지 행해지고 있다.
이 지역에서도 화가들의 후원조직으로 작가들의 작품을 컬렉션하고 서로 상생하려는 조짐들이 보인다. 그 시대의 문화나 예술을 주도하는 사람들 중에는 예술적 안목을 가지고 개인 컬렉션을 하거나 화랑을 여는 사람도 있었고 메세나 운동을 하는 기업인도 있었다.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며 예술인의 패트런이라는 자부심을 가지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작업을 하는 지역 작가들에게도 희망을 줄 것이다. 최근 여야 의원들이 예술인 복지법을 제정하려고 한다.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문화인 실태조사에서 창작 관련 월수입이 전혀 없다(37.4%)가 가장 많았다는 사실은 예술인들의 실상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예술가들의 권익과 복지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현대 미술의 최전방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한국작가 이우환의 대형 회고전을 연다. 대형 회고전 '무한의 제시'는 고 백남준 선생 회고전(2000년) 이후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처음 열리는 한국 작가 전시다. 이우환 선생의 대형 회고전이 열린 배경에는 개인적인 역량과 작품의 훌륭함도 있겠지만 한국의 국력과 미술시장의 역할이 커졌다는 사실도 있겠다. 도이치뱅크는 홍콩 국제 아트페어의 메인 스폰서인데 세계적인 화랑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전시회를 기획하여 1979년부터 시작한 컬렉션은 7만 점에 달해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고 한다.
원래는 직원들의 일상에 아트를 끌어들임으로써 창의력과 혁신정신을 북돋운다는 철학으로 출발했으나 이제는 이 은행의 사회적 책임, 고객관계, 브랜드 마케팅, 종업원 복지 등 모든 중심 활동에 미술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미술의 마력과 아우라로 금융업을 예술로 승화시키고 돈에 지친 영혼에 안식을 제공한다고 한다.
지역 사회에서도 작가, 화랑, 컬렉터, 미술관, 기업의 유기적인 협조가 필요하고 화가들도 자발적인 활동으로 화가신용협동조합을 만들어 작가들이 투자하고 경영하여 어려운 화가를 돕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세계 유수의 화랑과 미술관에 진출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가지게 해야 한다. 그 작업을 보러 세계 여행을 할 날을 기대해본다.
정태경(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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