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의 초대 대통령 세스페데스 묘지보다 더 화려한 흑인 바텐더의 묘지. 세멘테리오 꼴롱 묘지의 가운데 위치한 곳에 쿠바의 초대 대통령 세스페데스의 묘지가 있다. 그런데 그 바로 옆에 대통령 묘비보다 훨씬 높고 화려한 묘지가 있다. 이 묘지의 주인공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바로 미국의 대문호 헤밍웨이와 관련이 있는 인물이다. 1950년대 초는 헤밍웨이의 전성시대였다. '노인과 바다'로 1953년에 퓰리처상을 받고 이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헤밍웨이는 툭하면 플로리다에서 쿠바 별장으로 갔다. 쿠바에서 작품 활동을 하던 헤밍웨이의 단골 술집이 아바나에 있는데 그곳이 '플로리디따'라는 바였다.
헤밍웨이는 이 바의 구석자리에 자주 앉아서, 자신이 낚았던 고기 자랑을 하며 칵테일을 마시곤 했다. 흑인 바텐더는 헤밍웨이를 위하여 칵테일 '다이키리'(daiquiris)를 만들곤 했다.
◆대통령 묘지 옆에 묻힌 흑인 바텐더
헤밍웨이는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서 술을 마시곤 했다. 늙은 흑인 바텐더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면서. 이 흑인 바텐더는 헤밍웨이를 위하여 새로운 칵테일을 하나 개발했다. 그게 바로 '다이키리'다. 우리나라의 칵테일 바에도 이 칵테일이 있다. 얼음을 갈아 만든 빙설에 럼과 사탕수수즙, 레몬을 넣고 만든 이 칵테일을 맛본 헤밍웨이는 그 이후부터 이 칵테일만 마셨다.
이 소문이 나자 돈 많은 미국 관광객이 쿠바의 '플로리디따' 바에서 '다이키리' 한잔을 마셔보지 못했다면 쿠바 여행을 했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란 말이 생겨났다. 당연히 이 바에는 미국인 부호들이 줄을 섰다. 사람들은 모두 '다이키리'를 개발한 흑인 노인이 직접 만든 이 칵테일을 마시려고 했고, 가난한 흑인 바텐더가 바 주인보다 더 많은 돈을 벌게 됐다. '다이키리' 한 잔 값은 50센트였지만 팁으로 열 배, 스무 배의 돈을 번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 흑인 바텐더가 '플로리디따' 바를 사고 그 옆에 딸린 식당까지 사버렸다. 꼴롱 공동묘지의 대통령 묘 옆에 있는 크고 화려한 묘의 주인이 바로 이 흑인 바텐더이다.
쿠바에 가면 꼭 가보리라 마음먹었었던 '플로리디따'는 분홍빛 단층의 아담한 건물이었다. 외벽의 간판에는 헤밍웨이가 좋아했던 곳, '다이키리' 원조라는 글이 붙어있다. 바는 중앙에 카운터가 있고, ㄷ자 모양의 공간에 몇 개의 테이블이 놓여 있다. 집기들은 헤밍웨이가 살던 당시의 것 그대로라고 한다. 한쪽 구석에 바에 앉아있는 헤밍웨이의 동상이 있고, 안쪽의 두 벽면에는 헤밍웨이 관련 사진 수십 장이 게시되어 있다.
◆아바나 동쪽의 작은 어촌, 코히마르
쿠바를 얘기할 때 헤밍웨이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을 만큼 쿠바 곳곳에는 헤밍웨이의 흔적으로 넘친다. 아바나 동쪽으로 가면 작은 어촌, '코히마르'가 있다. 작고 조용했던 해변 '코히마르'는 유명해지면서 커플들이 즐겨찾는 명소가 되었지만 원래는 헤밍웨이가 낚시를 즐겼던 곳이다.
이 마을에 들어섰을 때의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고요'다. 청록을 뽐내고 있는 나무길이 있는 마을을 지나면 확 트인 자연 빛깔의 때 묻지 않은 바다가 눈에 찬다. 헤밍웨이는 이곳에 서서 낚시도 하고 가끔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기도 했는데, 이 '코히마르'의 평화로운 풍경을 보며, '노인과 바다'라는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렇게 고요하고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기에 헤밍웨이에게 수많은 영감과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봤다.
옛날 등대였을 법한 성곽은 어림잡아도 몇 십 년의 자취를 실감한다. 이곳은 옛날부터 해안 경계를 하는 군사시설이었다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보고 싶었으나 촬영을 거부당했다. 헤밍웨이가 낚시를 즐기던 선착장에는 유명한 탓인지 언제나 많은 낚시꾼들로 붐빈다.
헤밍웨이는 1930년대부터 쿠바 혁명이 일어난 다음 해인 1960년까지 쿠바에서 작품활동을 했다. 그때 묵었던 호텔이나 식당이 잘 보존되어 있고, 헤밍웨이가 살던 집은 박물관으로 만들어져 있다. 박물관에는 사슴, 표범가죽, 호랑이 얼굴 등 집안 곳곳에 그의 취미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데 헤밍웨이는 낚시와 함께 사냥도 무척 즐겼다고 한다. 또 대문호답게 밥 먹는 식당만 빼고는 그 어떤 방을 가도 온통 책으로 가득 차 있다.
3층으로 올라가면 언제나 유유자적 놀기 좋아했던 헤밍웨이가 좋아했던 전망 좋은 방도 있다. 미국의 작가가 지금은 대표적인 반미국가인 쿠바의 중요한 관광자원이 되어 있으니 이것도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춤과 음악의 뜨거운 열정, 아바나
아바나의 하늘에 노을이 지고 낭만적인 밤이 찾아오면 낮과는 또 다른 매력을 볼 수 있다. 밤이 되자 카페는 더욱 활기가 넘친다. 거리도 춤을 추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열정적인 아바나의 밤이다.
가게뿐 아니라 거리 어디를 가나 신나는 연주를 들을 수 있다. 밤이 깊어질수록 아바나는 점점 춤과 함께 뜨거워진다. 아바나엔 다양한 공연을 볼 수 있는 카페가 많고 플라멩고부터 클래식 연주까지 취향대로 골라서 갈 수 있다. 쿠바의 낮과 밤을 겪어 보면 헤밍웨이가 사랑한 나라 쿠바, 춤과 음악의 뜨거운 열정이 끓는 나라 쿠바를 왜 '카리브해의 진주'라 부르는지 제대로 알 수 있다.
글'사진 도용복 대구예술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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