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베이징공항 난동기

지난해 8월, 제1차 중국 실크로드 탐사 마지막 날 새벽이었다. 비행시간에 맞춘 빡빡한 마지막 일정은 실로 염천에 콩 볶는 듯해 일행 모두 체력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이제 두어 시간 호텔에 들어가 눈을 붙이고 다시 나와 인천으로 입국을 해야 할 참이다. 그런데 아뿔싸, 베이징 공항 소화물 벨트에서 받아든 몇 사람의 여행가방이 깨어져 덜덜덜 실려 나온 것이다.

이 난제를 어떻게 해결하나. 다른 일행들은 로비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당사자들은 공항 사무실을 찾아 나섰다. 마침 출구 쪽에 전형적인 중국 미인형의 여직원이 팔짱을 끼고 서 있어 가방의 파손된 부분을 가리키며 사무실 위치를 물었다. 하지만 그 여직원은 쌩하니 파르족족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를 외면하는 것이었다. 아, 중국은 사회주의국가니까 청각장애를 가진 직원을 채용한 모양이구나, 우리는 잠시 후 다른 직원의 안내를 받아 사무실로 갔다.

역시 만만디였다. 이런 일이 자주 있는 듯 가방을 살펴본 중국 곰처럼 둥글둥글하게 생긴 남자 직원은 중국제 가방을 줄 테니 바꿔 가려느냐, 세 시간이 걸리는 서류를 작성할 테냐, 심드렁하게 우리에게 물어왔다. 급하게 불려 들어온 현지 가이드의 말인즉 한국 여행객들이 시간에 쫓기는 걸 알아 늘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끈다는 것이다. 마침 일행 중에 변호사가 있어 우리나라에서 처리할 테니 파손 증명서를 떼어 달라고 했다.

그때부터 문제였다. 저쪽 방에서 서류를 한 장 가져 오는 데 몇 분, 복사하는 데 몇 분, 아예 밤을 새우기로 작정한 듯했다. 부글부글 속을 끓이며 그 동작들을 눈으로 쫓고 있는데, 아, 글쎄, 아까 출구 쪽에서 우릴 보고 '쌩 까던 여우깽깽이 같은' 여직원이 사무실로 들어와 남자직원의 옆자리에 터억 앉는 것 아닌가. 더군다나 주고받는 말투로 이곳 직원임이 분명한데 여전히 팔짱을 낀 채 우릴 내려다보며 남자 직원의 일을 도와줄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때 결국 화르르 나는 폭발하고 말았다. '이런 자본주의 물을 먹은 사회주의 공무원의 전형들 같으니, 야간 매니저 부르고 빨리 처리하시오!' 물론 우리말이었다. 결론은, 놀란 직원들이 삼십 분 만에 처리해주기로 했지만 피곤에 지쳐 기다리는 다른 일행들을 배려해 우리가 보상받기를 포기한 것이다. 분을 삭이지 못한 나는 며칠 전의 키신저처럼 외쳤다. 'G2? 경제는 어떨지 몰라도 문화적으론 백 년 걸려도 안 될 거다! 중국!'

박미영(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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