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필름통] 당신의 존재를 아무도 모른다면

도쿄의 한 작은 아파트에 한 가족이 이사를 온다.

집주인에게 식구가 적은 척하기 위해 엄마와 12세 장남 아키라는 몰래 동생들을 짐 속에 숨겨 온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시끄러운 소리를 내지 말 것, 밖에 나가지 말 것 등등의 규칙을 정한다. 학교에도 보내지 않는다. 집안에서만 갇힌 듯 살아가지만 아이들은 엄마가 있어 행복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엄마는 아키라에게 동생들을 부탁한다는 쪽지와 약간의 돈을 남기고 사라져버린다. 이제 아무도 모르게 네 남매는 함께 살아가야 하는 슬픈 모험이 시작된다.

처음에는 견딜 만했다. 엄마는 가끔 선물을 사들고 불쑥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머무는 것도 잠시, 그녀는 서둘러 짐을 챙겨가지고 크리스마스 전에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집을 나서지만 역시 돌아오지 않는다.

섣달그믐까지도 엄마가 돌아오지 않자, 아키라는 엄마가 보내온 편지 주소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전화를 걸지만, 엄마의 성이 바뀐 것을 알고는 전화를 끊어버린다. 엄마가 자신들을 버렸다는 것을 깨닫지만 동생들에게는 이 사실을 숨긴다.

엄마가 보내온 돈도 바닥나고 편지도 끊기고, 밀린 세금 영수증들이 쌓이기 시작한다. 네 남매가 더 굳게 뭉쳐야 한다고 느낀 아키라는 더욱 적극적으로 동생들을 돌본다. 집에는 전기도 수도도 모두 끊겼기 때문에 공원에서 머리를 감고 빨래를 한다. 그러나 아무도 이들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그들이 그토록 굶주리고, 아프고, 외로운지 아무도 모른다.

일본 고레에다 히라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2004년'사진)는 엄마가 떠난 후 남겨진 네 남매가 주변의 무관심 속에 힘겹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가슴 아픈 이야기다. 1988년 일본에서 실제로 있었던 '나시 스가모의 버림받은 4남매 사건'을 토대로 한 작품이다.

서로 다른 아버지에게서 난 4명의 아이들은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고 학교에도 다니지 않는다. 아이들은 세상에 태어났지만 흔적이 없다. 결국 엄마에게 버림받은 후 6개월 동안 스스로 살아가다가 막내 여자아이가 죽음으로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영화는 냉혹하리만큼 차분하게 아이들을 비춘다. 막내가 굶어 죽어도 크게 슬퍼하지 않는다. 이사올 때보다 조금 더 큰 박스에 넣어 들고나간다. 아키라는 "조금 더 컸네!"라고만 말한다. 그것이 더 슬프다. 아무도 모르게 태어나, 아무도 모르게 죽어간 아이.

투명인간처럼 화장실에서 노숙하는 삼남매의 사연이 방송돼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학교에 보내지 않고 화장실에서 생활하게 하고 출생신고도 하지 않은 것이 영화 '아무도 모른다'와 흡사하다. 무심한 도시의 일상 뒤에 숨겨진 잔인한 현실에 모골이 송연하다.

김중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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