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대구시 중구 계산성당 옆에서 이상화 고택으로 가는 보도블록에 새겨진 시인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의 첫대목이다. 보도블록을 밟을 때마다 시 한 구절 한 구절이 새겨진다. 밤에는 반짝반짝 빛을 내며 시구들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온다. 벽에는 이상화 시인의 젊었을 때 사진이 마치 이 시대에 다시 태어난 것처럼 위엄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것이 바로 스페이스 마케팅의 대표적 사례다. 타 지역에서 대구를 방문한 이들도 이 스페이스 마케팅이 "아주 잘 됐다"고 칭찬한다. 도심 속 보도블록을 잘 활용한 사례다.
대구시 중구 계산동 2가 84번지. 이상화 시인이 생전에 작품활동을 하며 살았던 이 고택은 주변의 스페이스 마케팅과 더불어 2008년 8월 12일 개관했다. 건물 주변을 둘러보면 이색적 스페이스 마케팅의 진수라 할 수 있다. 달구벌대로 계산오거리 인근에 위치한 이곳은 앞쪽으로 초현대식 건물(신성미소시티, 현대백화점)과 뒤로는 오래된 전통 기와집, 약전 골목이 자리하고 있어 현대와 과거가 함께 살아 숨쉰다. 이런 주변 환경 속에서 이상화 고택은 대구시민 및 외지인에게 대구의 자랑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피아노의 시인 쇼팽이 태어난 바르샤바도 이 스페이스 마케팅의 좋은 사례로 알려져 있다. 특히 쇼팽 탄생 200주년에는 쇼팽과 함께 살아 숨쉬는 음악을 후손에 남기기 위해 도시 곳곳에 음악 벤치를 놓았다. 검은색 화강함 벤치에 앉아 버튼만 누르면 쇼팽의 피아노곡이 흘러나온다. 도시와 인간이 하나되는 스페이스 마케팅이다.
설치미술계의 세계적 거장 크리스토와 장끌로드 부부는 독일의 베를린 국회의사당을 은색 나일론과 파란 리본으로 포장해 시민들에게 선물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는데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됐다. 베를린 국회의사당은 독일 동서 화합의 상징이며, 세계민주주의의 중요한 이정표로서 의미가 크다. 이 이벤트는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스페이스 마케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스페이스 마케팅이 서울을 바꿔놓은 획기적인 사례도 있었다. 바로 이명박 대통령의 가장 큰 치적이라 할 수 있는 청계천 복원이다. 많은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청계천이 시민들에게 개방되는 순간 모두 기뻐했다. '도심 한가운데 이런 장소가 있어 행복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도심 한복판인 광화문과 시청 앞,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이들이 살아가는 공간에 그 열기를 식혀주는 시원한 하천이 흐르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이 어디 있겠는가? 서울이라는 멋진 도시를 한껏 알릴 수 있는 상징물이 됐다. 외국인들도 서울 나들이 중에 이 청계천에서 쉬는 것을 좋아한다.
이렇듯 국내외에 스페이스 마케팅은 도시에 아름다움과 그 의미를 부여한다. 건물과 거리, 그리고 도시를 흐르는 하천까지 스토리를 입히는 것이다. 각 지자체는 그 도시의 공간을 통해 시민들과 대화하고 소통하는 공간을 만들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거리와 공간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 그래서 이야기가 있고, 또 공간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곳으로 변하고 있다. 건축과 도시에 스토리와 예술을 입히는 것이 스페이스 마케팅의 핵심이다.
도시라는 무대의 배경은 장소다. 비효율적 모습의 공간, 전략적 접근을 무시한 시설들은 도시의 경쟁력을 잃게 한다. 스페이스 마케팅은 사람을 모이게 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인간의 오감과 연관시켜 '복합성', '전문성', '주목성'이라는 3가지 기준을 두고 그 효용성을 판단해야 한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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