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에 빠진 기억 때문에 아직도…
시골의 밤하늘에 반짝반짝 별들이 아름다운 빛깔로 수를 놓는 그림 같은 하늘은 일곱 살 여자 아이의 마음까지도 설레게 하였다. 모깃불을 지피고 대나무로 만든 넓은 평상을 마당 한가운데에 놓고 온 가족이 모여 앉아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어머니는 소쿠리에 삶은 노란 옥수수와 찐 감자, 둥근 달만큼이나 크고 탐스러운 수박을 가지고 오셨다. 한입씩 베어 물면 빨갛게 수박물이 하얀 속옷을 물들였다. 이런 밤이면 이 세상에서 부러울 것이 없는 우리 가족은 정말 행복하였다.
여름방학은 왜 그렇게 짧게 느껴지기만 하던지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았다. 7살에 1학년이었던 나는 여름 내내 주전자를 들고 옆집 깊은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왔다. 그것이 할 일 없는 나의 일이었다. 콩국수를 만들 때 이가 시려서 얼음보다 더 차가운 옆집 우물이 필요했고 미숫가루를 물에 타서 마실 때도 시원한 물이 필요하였다. 물심부름을 많이 한 날은 7번이나 하기도 하였다. 그날도 점심때 주전자를 들고 나섰던 나는 한 시간 삼십 분이 지난 후에야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옆집은 1분 거리에 있었다. 인형 같은 작은 몸을 가진 나는 두레박을 깊은 우물에 넣어서 끌어올리다가 큰 돌멩이에 걸려서 돌과 한참을 씨름하다가 우물에 빠져서 두레박 안에 들어앉게 되었다. 겁에 질린 얼굴로 나는 줄을 잡고 있었다.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중학생이던 약국집 언니가 우물가에 놓인 분홍슬리퍼 한 켤레를 보고 우물 안을 들여다보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언니는 급하게 달려가서 우리 아버지를 모시고 와서 나를 끌어올렸다. 난 자리에서 기절하고 놀란 가슴에 참기름 반 병을 특별한 약처럼 먹고 일주일을 누워서 앓았다. 그 뒤로 우물가 근처에는 놀란 기억 때문에 가지 못하였다. 한 해 한 해 여름이 가고 계절이 바뀌어서 어느덧 내 나이 마흔셋이 되었다. 여름 아름다운 계절 7월이 성큼 우리들 앞으로 다가왔다. 어린 시절 좁은 방에서 뒹굴던 형제들의 모습이 더욱 그리운 날이다. 올해 7월에도 가슴 설레는 밤하늘을 보면서 아름답고 행복한 일만 가득하기를 속으로 빌어본다.
조선희(대구 수성구 지산동)
♥수박 서리 함께하던 친구들 그리워
이제 7월이 되면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됩니다. 30여 년 전 문득 그 시절의 추억으로 되돌아가 봅니다. 당시 농촌에서는 보물 1호로 송아지를 한 마리씩 키우고 있었죠. 7월 한여름이면 송아지를 낙동강으로 몰고 가 풀을 뜯어 먹이는 게 우리들의 하루 일과였습니다. 아침 해가 뜨자마자 우리들은 각자 송아지를 몰고 낙동강으로 갑니다. 풀이 많은 곳에 가서 송아지 줄을 풀어놓고 우리들은 발가벗고 시원한 낙동강으로 풍덩 뛰어듭니다.
지금이야 강물이 오염이 되어 수영을 못 하지만 당시 강에는 조개도 많고 물이 정말 깨끗했습니다. 헤엄쳐 낙동강을 건너가기도 했습니다. 강 건너 경북 고령 개진면에는 수박밭이 많았습니다. 우리들은 그 수박이 탐이 나서 서리를 하러 갔던 겁니다. 하루는 친구 몇 명과 낮은 포복으로 살금살금 기어갔습니다. 원두막에 주인이 없는 걸 확인하고 잘 익은 수박을 따서 나오려는 순간 저 멀리서 "야! 이놈들 거기 섰거라!" 하시면서 주인아저씨가 고함을 질렀습니다. 순간 우리들은 강으로 뛰어들어 달아났지만 친구 한 명은 주인아저씨에게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우리들은 도망을 포기하고 아저씨에게 되돌아가야 했습니다. 주인아저씨의 호령에 저와 친구들은 뜨거운 모래밭에 무릎 꿇은 채 두 손을 들고 1시간여 동안이나 벌을 서야 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이놈들! 다시 이런 짓 하면 가만두지 않으시겠다'면서 불호령을 내리셨습니다. 이윽고 아저씨는 오늘 너희들이 딴 수박은 가져가서 먹으라면서 주셨습니다. 우리들은 그 수박을 강물에 둥둥 띄워 헤엄을 쳐서 가져와 시원한 수양버들나무 아래에서 친구들과 나눠 먹었습니다. 30여 년이 흐른 지금 그때의 친구들이 그립습니다.
김명수(대구 달성군 현풍면)
♥'전통 몸조리'에 질식할 뻔
나의 7월은 큰 의미가 있는 달이지만 동시에 고통의 달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두 딸아이의 탄생으로 더위와의 싸움이 시작되었고, 엄마가 알려주신 전통의 '산후 몸조리' 방법에 질식할 것 같은 고통을 참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펄펄 끓는 미역국을 한 달 이상 먹어야 했고 긴소매 옷에 양말까지 신고 있어야 하는 것에 더 보태어 한옥인 친정집의 모기떼는 왜 그리도 기승을 부리던지. 게다가 하필이면 종갓집인 친정에 음력 6월에 제사가 세 번이나 있어 제사에 어김없이 참석하러 오신 집안 어른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해야 했고, 또 현관문 앞에서 기다리던 모기들이 얼씨구나! 하면서 손님 뒤를 따라서 들어와 가장 만만한 아기 팔뚝에 입을 대니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모유를 먹이던 터라 땀과 함께 흘러내리는 젖을 기저귀로 닦아 내느라 분주했던 지난여름의 수고로움을 보상이라도 하듯 방긋방긋 웃으며 걸음마 하는 둘째를 보면 고통만큼 기쁨도 큰 것 같다. 정말 행복은 그저 주어지는 게 아닌 것 같다.
육아휴직 중이라,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잠시 나만의 시간에 차 한 잔을 들고 앉아 있는데 언제 일어났는지 둘째 딸아이가 배시시 웃으며 거실로 나온다. 그 모습을 보니 '올 7월은 행복하게 보내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직장인으로서 나름대로 보람은 있었지만, 전업주부로서 아이들을 키우고 남편 출근과 퇴근을 기다리면서 보내는 하루도 꽤 행복한 일상이다. 이 행복, 7월에 두 딸의 출산이 있었으므로 더욱 크게 와 닿는 것 같다. 출근준비하면서 슬슬 아들 타령하는 남편의 말에 쓸데없는 소리라고 쏘아붙였지만, 이러다 내년 7월에 또 산후 몸조리하는 건 아닐까?
최윤서(대구 서구 내당1동)
♥무진장 더울 때는 해변보다 계곡
7월이면 여름휴가가 시작되고 너나 할 것 없이 짧으나마 휴가계획을 세울 것이다. 무더운 계절이라 흔히 물을 먼저 떠올려 보지만 무진장 더울 때는 해변보다는 계곡이 더 시원하다는 것을 계곡에 가보고서야 알았다.
지난해는 형제들과 불영계곡으로 갔다. 깊은 계곡인 만큼 그 시원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피서지였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다. 낮에는 지치지도 않는지 종일 물놀이 하고 밤이면 텐트 속에서 실뜨기 놀이하고 끝말 잇기 하면서 사촌들과 정을 쌓아갔다. 모기가 달려들어 여린 팔뚝을 씹어대도 그저 좋기만 한 아이들의 놀이는 우리들과는 사뭇 달랐다.
카세트를 틀어놓고 밤새 텐트에서 노래를 부르고, 숯불에 지글지글 고기를 구워먹던 것을 추억으로 간직한 그 시절과는 달리 지금의 놀이 문화는 많이 발전한 것 같았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주위에서 발생한 쓰레기는 스스로 담아가는 문화가 정착된 것 같아 뿌듯했다.
양일용(대구 달서구 용산동)
♥반세기 전 훈련받던 곳에 문학 기행
지난해 가을 수필과 지성문예아카데미에서 주관한 문학기행에 참가하였다. 영천 고경면 고도리 포도밭에 들어섰다. 눈에 익은 제3사관학교 앞이었다. 육군에 입대해 논산훈련소 훈련을 마치고 '헌병 병과'를 받아 훈련을 위해 왔던 곳이 바로 제3사관학교였다. 헌병학교 훈련시절이 떠오르며 깎아지른 바위를 오르내리던 장군봉이 손에 잡힐 듯했다. 헌병 생도들의 지축을 울리던 군화소리, 기상 나팔소리, 하늘을 울리던 군가 소리 등을 회상하다보니 반세기가 다 지났다. 범을 잡던 기상에는 이제 잔주름이 흐른다.
7월은 이렇게 나의 머릿속에 새겨져 있다. 마당 가장자리에는 무궁화가 아름답게 피고 있다. 바깥에는 장마의 영향으로 가랑비가 내린다. 곱게 핀 무궁화가 창문을 넘어 기어 들어온다. 나라꽃 무궁화를 보며 애국심이 돋는 즐거운 7월의 아침이다.
박효준(대구 달서구 송현2동)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