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손때 묻은 작업공간 이제 시민 품으로" 집 개방 선언 이성조 선생

남석 이성조(74) 선생은 깊은 슬픔에 침잠해 있는 모습이었다. 평생을 그림자처럼 함께 다니던 부인과 사별하고 27일 49제를 올렸다. 영혼이 있다면, 그 영혼은 이제 극락으로 훨훨 떠났을 테다. 평소 지병 없이 건강했기 때문에 더욱 황망한 이별이다. 이 대목에서 그는 눈시울을 붉혔다.

"죽음보다 사는 게 더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슬픔에 잠겨 있을 수만은 없다. 그는 최근 그의 집과 인근 땅을 시민들을 위해 개방하기로 결정하고 준비 중이다. 팔공산은 참으로 넉넉한 산이지만, 식당이나 사유지가 대부분이니 마음 놓고 들어가 쉴 수 있는 곳은 의외로 적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터를 문화공간으로 바꾸고 있는 중이다.

"집을 포함하면 이 대지가 4천300㎡(1천300여 평)입니다. 적지 않은 공간이지요." 이를 위해 그는 대'소 전시실을 갖춘 전시공간, 사물놀이나 기타 연주를 할 수 있는 공연공간, 휴식공간, 체험학습공간, 명상기도공간, 체육공간, 산책로와 삼림욕장을 한창 만들고 있다. 체육공간에는 족구장과 배드민턴장을, 휴식공간으로는 두 개의 원두막을 조성 중이다. 사실 수년 전 3천여 점의 작품과 집 모두를 대구시에 조건 기부하려 했으나 특혜 시비로 취소됐다.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래도 18살에 붓을 들어 지금까지 무사히 살아온 데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

"예술 하는 사람은 마음이 여유로워야 해요. 집의 담을 만들지 않고 시민들에게 이미 공개했지만 웅장해서인지 막상 들어오기가 쉽지 않은가 봅니다. 휴식공간과 전시 등이 이루어지면 자연스럽게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 되지 않겠어요?"

그는 앞으로 자신의 작품 3천여 점과 자신의 집을 법인으로 만드는 것이 마지막 꿈이다. 자녀들도 모두 동의했다. 주변 지인들도 돕겠다고 약속했다. 올 9월쯤 되면 완성될 예정이다. 그는 문화 공간 조성과 함께 요즘 작품 활동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서예 붓 대신 캔버스와 물감을 잡았다. 지난해 11월부터 하루 8시간씩 오로지 그림만 그리고 있다. 명상을 한 후 붓을 들면 저절로 그림이 그려졌다. 기(氣)가 가득 찬, 우주 시리즈 수백 장을 완성하고 있다.

"이렇게 생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저 역시 언제 갈지 모르니까요. 팔공산 자락에 오실 때 편하게 들러주셨으면 합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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