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세계의 오페라 팬들은 빛나는 스타들로 인하여 연일 역사적인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특히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을 중심 무대로 활동한 전설적인 3인의 남성 성악가 테너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 바리톤 티타 루포(Titta Ruffo), 그리고 러시아 출신의 베이스 표도르 샬리아핀(Feodor Chaliapin)으로 인하여 오페라의 황금시대가 열리게 된다. 2명의 이탈리아 출신 성악가와 마찬가지로 러시아 출신인 샬리아핀도 어린 시절 극심한 가난 속에 자랐으며 우연히 우사토프(D.A.Usatov)라는 테너에게 눈에 띄어 무료로 레슨을 받으며 성악가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후 불과 20대의 약관에 전 세계 주요 오페라 극장의 중심에 우뚝 선 샬리아핀은 카루소, 티타 루포 등 이탈리아 벨칸토 발성으로 노래하는 성악가들에 익숙해진 청중들에게 자신만의 러시아적인 색깔로 인하여 처음엔 다소간의 거부감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가진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목소리와 그 누구도 따라가기 힘든 뛰어난 연기력 덕분에 곧 전 세계 오페라 팬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샬리아핀 자신이 지휘자를 직접 지목하기도 했으며 극장의 모든 스케줄을 자신의 일정에 맞추는 등 일반적으로 볼 때는 다소 지나친 감이 있을 만큼 절대적 권위를 가지게 되었다.
샬리아핀에 대한 일화는 매우 많다. 큰 덩치에 어울리는 호방한 성격과 다소 거친 행동, 그리고 큰 스케일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독창회 때는 부를 곡목을 확정하지 않고 약 100여 곡의 제목이 적힌 프로그램을 관객들에게 나누어주곤 무대에서 즉흥적으로 "몇 번을 노래하겠습니다"하며 연주를 하곤 하였다.
이런저런 일화가 있지만 결론은 뒤끝 없고 매우 인자한 사람이었다는 것이 세간의 중평이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여파로 많은 러시아 예술가들이 프랑스 파리로 망명했을 때 이미 파리에 거주하고 있던 샬리아핀은 고국의 동포들을 헌신적으로 돌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해 샬리아핀이 성(城)을 산 기념으로 파티를 열자 누군가로부터 "어떻게 성을 살 생각을 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받곤 나온 대답이 의외였다. "아니, 저렇게 많은 귀족들도 다 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 위대한 예술가가…." 인자한 그답지 않은 다소 거친 표현이지만 한편으로는 세계 음악계를 호령한 그다운 대답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예술가의 역할이 중요해졌고 예술인이 대접받는, 그리고 수많은 예술작품과 행위가 넘쳐나는 공연문화중심 도시 대구에 살고 있지만 때로는 예술가로서의 자화상이 초라해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흐리게 보일 때면 샬리아핀의 말을 생각해본다.
뭐, 절대로 예술가들이 더 잘났다는 말은 아니고 우리 스스로 좀 더 자신감을 가지자는 나만의 주문일 따름이다.
성악가'아미치아트컴퍼니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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