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져지지 않는 것을 만질 수 있게,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 하는 과정이다. 일찍이 존재하지 않던 것들이 예술가의 손을 통해 거기,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고, 울부짖거나 색과 향을 발한다.
예술가란 존재하지 않던 것을 존재하도록 하는 사람이다. 평범한 우리는 그들이 창조작업을 마친 뒤에야 비로소 거기 그것이 있음을 알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전율한다. 일상의 평정심을 잃어버리는 상태, 그것을 우리는 '예술적 감동'이라고 칭한다.
◇1998년 안무자 데뷔
발레리나 우혜영은 영남대 무용학 전공교수이자 '뮤 발레단' 예술감독이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작품을 만들고, 무용수로 직접 출연도 한다. 안무뿐만 아니라 무대에서 펼치는 행위 역시 중요한 창조과정이기 때문이다.
우 교수는 1998년 '98 현대춤 신인발표회'에서 '남겨진 나를 위하여-첫 번째 잔인한 상상'을 안무하면서 첫 번째 작품을 만들었다. 이후 2002년 '우혜영 발레단'을 창단, 본격적으로 발레작품을 안무하기 시작했고, 2006년 '뮤(Myu) 발레단'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전투에 임하는 병사'처럼 창작에 매달려 왔다. 순수발레 공연만 23회를 안무했고, 출연작품은 큰 작품만 해도 50회가 넘는다.
중학교 2학년 때 발레를 시작했으니 다른 발레리나에 비해 출발은 상대적으로 늦은 편이다. 그러나 쉬지 않고 달려온 덕분에 더 먼 거리를 달려 냈다.
"25년 동안 발레만 생각했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영화를 볼 때도, 벤치에 앉아 약속한 사람을 기다릴 때도 발레를 생각했지요. 내 하루의 시작과 끝은 언제나 발레였습니다."
소설을 읽으면 글자가 이미지 언어가 되어 어지럽게 떠올랐고, 음악을 들으면 그 선율이 무용수의 몸짓으로 눈앞에서 하늘거렸다. 영화를 볼 때도, 심지어 철학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머리와 가슴에 와 닿은 이미지가 달아나기 전에 몸짓 언어로 형상화시키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그러나 이미지는 자신에게 왔는데, 그것이 무대에서 형상화되지 않을 때 고통스러웠다.
◇'형상화 과정의 고통'
저 말없이 웅크린 바위 속에 포효하는 호랑이가 들어 있는데, 내 손에 잘 벼린 정과 굳센 망치가 있는데, 쪼아도 쪼아도 웅크린 바위는 호랑이가 되어 일어나지 않고, 포효하지도 않을 때 고통스럽다. 그것은 우혜영만의 고통이 아니라 창작에 임하는 모든 예술가의 고통일 것이다.
우혜영 교수는 가장 마음이 가는 작품으로 최근 재 안무한 '오선'을 꼽았다. 예술가이자 한 인간으로서의 슈베르트를 복잡한 심정을 음표와 연주라는 행위를 통해 표현한 작품으로 6월 11일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했다.
우 교수는 "애착이 많이 가는 작품이지만 더는 못하겠다"고 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자신이 원하는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그 무심한 바위 안에 분명히 호랑이가 앉아 있는 것이 보이는 데, 아무리 쪼고, 다듬어도 바위는 호랑이가 되어 일어나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쉽죠. 무척 아쉬워요. 내가 (발레리나들을 대신해서) 무대에서 날아다니고 싶어요."
우혜영은 지독한 아쉬움을 '내가 무대에서 날아다니고 싶다'고 표현했지만, 어불성설임을 안다. 무용작품은 안무자의 내면에 떠오른 이미지를 자신의 몸으로 형상화하는 단계를 넘어, 무대에서 춤추는 각각의 무용수들 몸으로 형상화될 때, 그리고 발레리나들이 저마다 풀어내는 각각의 춤이 하나로 짜여질 때 완성된다. 안무자가 작품 전체를 레이아웃하고, 이끌어가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 제비처럼 미끈한 작품을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다. 무대에 선 무용수들이 생명을 부여할 때, 작품은 고등어처럼 살아 바다를 헤엄칠 수 있다.
"안무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머리에 그려진 이미지가 무대에서 빈틈없이 형상화되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안무자가 생각하는 이미지 이상으로 무용수들 개개인이 자기역할에서 영감을 발견하고, 완성해주기를 바랍니다. 무용수의 몸짓을 통해 안무자가 또 다른 영감을 받을 수 있다면 커다란 행복이죠."
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다. 안무자가 생각하는 이미지를 충실하게 만들어내기도 벅찬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많은 안무자들은 자신이 밑그림뿐만 아니라 세세한 부분까지 통제하려고 덤빈다. 우혜영 교수 역시 그렇다고 했다. 안무자가 하나하나 통제하고, 가꾸어가는 방식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은 고통스럽고, 불만족한 차선일 뿐이다.
우 교수는 안무뿐만 아니라 무대의상, 무대 세트, 소품, 음악, 영상까지 자신이 디자인하고 챙기려고 한다. 좋게 말해 열정이지만 좋은 방식은 아니다. 공연은 여러 사람이 하나의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이고, 따라서 영역별로 전문가들과 협업으로 한 사람의 감성과 머리를 뛰어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 생각이 너무 분명해서 그렇고, 또 작품에 관한한 타인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고…. 아무튼 좋지 않은 방식인 것은 분명한데, 여태 대안을 찾아내지 못했어요."
◇대사 없는 언어의 어려움
"가끔 발레를 다리나 번쩍번쩍 들어 올리고, 찢어대는 정도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다리를 쳐들고, 찢고, 빙글빙글 도는 것이 발레지만 그것이 발레작품의 목표는 아닙니다. 아름다운 몸동작을 통해 사람의 영혼에 행복, 정화, 즐거움을 주고자 하는 것이 제가 발레를 만드는 이유입니다."
무용은 몸의 언어, 즉 이미지 언어다. 문자나 말을 수단으로 삼지 않는다. 몸짓으로 상대방과 교감에 성공할 수 있다면 백 마디 말보다 진하고 깊은 감동을 전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만큼 어렵다. 눈빛과 몸짓으로 서로의 마음을 알기가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일상에서 자주 확인한다. 평생을 함께 살아온 부부도 '말을 안 하는 데 어떻게 아느냐?'며 부딪히기 일쑤다. 전문가들이 무시로 '사랑한다'고 말로 표현하라고 강조하는 이유 역시 대놓고 말하지 않으면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혜영 교수는 "발레는 몸의 스토리텔링이다. 그러나 문학작품이나 영화, 오페라처럼 기승전결이 완성된 스토리 형태로 전한다기보다, 장면 장면의 이미지로 의사를 전달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내 생각을 전달하기 힘들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한다.
우 교수는 "발레 작품에는 분명히 전체를 관통하는 줄거리가 있지만, 관객이 그 줄거리 전체를 다 알기는 어렵다. 설령 다 알지 못하더라도, 딱 한 장면에서라도 깊은 공감을 나눌 수 있다면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각 장면의 이미지 연출에 신경을 집중한다고 했다.
◇'예술과 대중 사이 균형잡기'
우혜영 교수가 안무하는 작품은 예술성과 대중성이라는 담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그녀는 "예술작품은 기본적으로 일상과 다른 무엇이다. 불편한 의자일 수 있고, 기대하지 않았던 기쁨일 수 있고, 결코 맞닥뜨리고 싶지 않는 불쾌감일 수도 있다. 관객의 이해와 공감을 청하면서도 조목조목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예술은 태생적으로 불친절한 무엇이다. 그러나 불친절에도 매력이 있다. 물론 친절한 예술에도 매력이 있다. 나는 그 두 가지를 모두 보여주고 싶고, 관객들로부터 어리둥절함과 공감을 모두 받아내고 싶다"고 말했다. 불친절하고 충격적인 작품이 '예술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지만, 친절하면서도 예술적인 작품도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그녀가 여러 번 재안무했던 작품 '저녁 식탁'은 영화나 뮤지컬 같은 느낌을 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사는커녕 설명이 거의 없는 발레작품을 보면서 뮤지컬을 떠올렸다면 대중적인 공감을 구하는 데 대단히 성공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저녁 식탁'은 부부가 늘 만나는 자리다. 남편은 늘 거기에 있고, 아내 역시 언제나 거기에 있다. 부부는 거기서 늘 똑같은 방식으로 밥을 먹고, 똑같은 이야기를 거듭한다. 식탁에 앉아 밥을 먹지만 두 사람은 언제나 허기를 느낀다. 저녁 식탁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익숙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두 사람은 조금도 서로를 경계하지 않는다. 부주의는 자연스럽게 불쾌감 혹은 싸움으로 이어진다. 눈앞에 놓인 물건을 집어 상대의 얼굴에 던지기 직전까지 치닫지만 결국 한 이불을 덮고 잔다. 좀 전까지 물어뜯을 듯 으르렁대다가 한 이불을 덮고 자는 이 짐승같은 관계가 부부다.
발레작품 '저녁 식탁'은 바로 이 납득하기 힘든, 그러나 자연스럽게 반복되는 일상을 그린 작품이다. 우혜영은 이 작품을 통해 가깝지만 먼 부부, 지루하지만 편안한 일상, 배부르지만 허기에 지친 삶을 그려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우 교수는 "기쁨, 슬픔, 분노, 혹은 불쾌함, 충격 등 모든 감정적 흐트러짐은 한마디로 예술적 감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나는 충격 혹은 불쾌한 감동보다는 아름다움과 행복, 평화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세상이 언제나 따뜻하고 정의로울 수는 없고, 변함없이 사람을 배려하는 공간은 아니지만, 자신의 발레작품에서만큼은 꿈과 환상을 심어주고, 관객들로 하여금 예술적 정화를 얻도록 하고 싶다는 말이었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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