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희준의 캐나다 편지]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세상

해마다 6월 둘째 주가 되면 이곳 몽튼 한인회에서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모시고 저녁식사를 함께 하고 작은 선물을 전달하는 행사를 마련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토요일 오후에 행사가 진행되었는데 거동조차 힘든 어르신들을 위한 작은 공연도 펼쳐졌습니다.

몽튼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이 스스로 마음을 내어 마련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이 행사는 작지만 의미가 있습니다. 각 가정에서 손수 만든 음식을 가져와 참전 용사들에게 대접하고 학생들은 장구와 북 그리고 가야금 연주 솜씨를 뽐내며 모두가 한마음이 됩니다. 그리 비싸지는 않지만 어르신들께 모두의 마음을 담은 전통 부채를 선물로 드리고 아리랑을 함께 부릅니다. '전쟁의 상처를 안고 오랜 세월 살아온 분들은 이 순간 무슨 생각을 하실까'하는 생각에 나도 몰래 마음이 짠해져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61년이 지났지만 그들의 기억 속에 대한민국은 아시아 대륙 동쪽 끝의 작고 가난한 나라, 전쟁 고아와 피란민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던 아픔으로 아직 남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제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고국에 대한 자부심도 읽을 수 있었고, 먼 이국땅에서도 꿋꿋하게 열심히 살고 있는 자식 같은 인생 후배들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표정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한국전쟁과 더 넓게는 한국의 역사를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얼마 전 몽튼에서는 안타까운 사연이 뉴스에 소개되었습니다. 2003년 캐나다에 와서 사업을 하고 있는 한국인 사업가가 막내아들의 병원비가 과하다는 이유로 6월 말까지 출국하라는 편지를 연방정부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캐나다 이민국에서 임시거주 비자 연장을 거부했다는 기사가 보도된 후 지역 주민과 한국 교민들 그리고 지역 정치인들이 캐나다 이민국의 조치에 반대하고 그 가족을 지지하는 서명 운동과 시위를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연일 지역 언론에 보도되었고 토론토, 밴쿠버까지 소식이 전해졌으며, 결국 한국 뉴스에도 보도되기에 이르렀지요.

8년여를 캐나다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당장 몇 주 내에 떠나라는 명령을 내린 것, 그것도 의료비 과다로 이런 결정을 했다는 것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는 지역 여론이 팽배했습니다. 8천여 명의 서명과 주정부의 의료비 지원 약속 그리고 지역 정치권의 노력으로 결국은 연방정부가 결정을 번복했습니다.

알고 보면 캐나다 사람들도 '아카디안'의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카디안'(Acadian)이란 1604년 최초로 신대륙에 정착한 프랑스인을 말합니다. 현재의 노바스코시아와 뉴브런즈윅 두 주에 살던 아카디안들은 18세기 신대륙에서 벌어진 영-프랑스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하는 바람에 개간한 땅을 영국에 빼앗긴 채 북미 곳곳으로 추방당했습니다. 아카디안의 3분의 2가 정착지인 이곳을 떠나야 했는데 이후 일부만 다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선조들의 그런 아픔이 있었기에 이곳 사람들은 한국인 기업가가 처한 상황을 외면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릅니다. 먼 나라에 와서 위로받은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지난 2주간 한국전쟁 기념행사를 치르고, 한국인 기업가를 위한 '서포트 랠리'(Support Rally) 행사를 지켜보면서 지역 커뮤니티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경험했습니다.

이 사건이 현지 지역신문에 보도된 후 기사에 달린 댓글은 하루아침에 떠나야 하는 한국인 가족에 대한 동정과 위로, 지원을 약속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고국에서 발행되는 신문에 달린 댓글은 그들을 비난하는 내용 일색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심사에서 나온 반응이 아닐까 싶습니다. '당신들 잘먹고 잘살겠다고 한국 떠나 남의 나라에 갔는데 그런 일 당했다고 억울해 할 게 뭐 있냐?' '아주 고소하다.' 등등. 이민이 지탄받고 비아냥거림을 당해야 하는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게는 그러한 댓글이 서글픔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민자들 사이에서 한국 사람의 적(敵)은 한국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씁쓸함을 느낍니다. 어떻게 보면 단지 부모 욕심 때문에 먼 곳으로 오게 된 제 아이들은 이런 말을 듣지 않고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아직까지 어른들 세계에서 일어나는 싸움, 부조리, 모순을 모르고 그저 노는 것이 즐거운 아이들입니다. 어른들이 서로 싸우고 다투는 모습을 자꾸 보여주는 것 같아 미안할 뿐입니다.

khj09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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