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반값 등록금, '뇌'를 바꿔야 한다

정치인, 특히 국회의원에 대한 블랙유머는 전 세계가 거의 공통적으로 칭찬보다는 꼬집는 게 더 많다. 나라를 위한다고는 하지만 '정치'라는 변수와 정략이 끼어들다 보니 국민들 눈에 곱잖게 보일 때가 많은 탓이다. 요즘 우리 국회를 보면서 흘러간 유머 한 가지를 골라봤다.

어떤 부인이 교통사고로 뇌 손상을 입었다. 당장 이식수술을 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정도였다. 남편이 의사에게 가장 좋은 뇌를 이식해 달라고 부탁했다.

"대학교수의 뇌가 있긴 한데, 천만 원입니다."

"그게 제일 좋은 건가요?"

"아니요, 더 비싸고 좋은 뇌가 있는데 국회의원 뇌입니다."

"그게 왜 더 비싸고 좋은데요?"

"거의 사용을 안 한 것이라 새것이나 마찬가지거든요."

국회의원들이 머리를 안 쓰고 생각 없이 멍청하게 나랏일을 처리한다는 걸 거꾸로 풍자한 개그다.

논란의 끝이 없는 반값 등록금 얘기만 하더라도 대학 현장의 교수들 뇌(의식)로 생각해 보면 여러 각도에서 깊이 고민해야 그나마 차선책이라도 나올 수 있을까 말까 한 정책인데 한방에 반값을 내놓으니 뇌(시건 머리)를 의심받게 되는 것이다. 물론 제대로 된 정책 법안들을 고민 고민 연구해 내서 의정활동 우수 의원으로 뽑힌 의원도 없지 않다. 속으로야 표 계산을 했든 말든 대학생들의 학비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취지 또한 틀린 건 아니다. 현재의 등록금이 지나치게 올라 버린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대학 등록금 논란은 국민적 토론이 시작돼야 할 때가 되긴 됐다.

문제는 재원과 방법이다. 반값이든 반의반값이든 누구 호주머니에서 깎아주는 만큼의 몫을 떼어 대느냐가 등록금 논란의 열쇠인 것이다. 학비를 대신 내줄 호주머니만 든든하다면 반값 온값 같은 건 따질 것도 없다. 유럽의 일부 대학처럼 전액 무상 교육도 약속할 수 있다. 그렇다면 누구 호주머니로 등록금 문제를 풀 것인가라는 초점만 남는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국가 재정 지원밖에 길이 없다. 현실적으로 국민 호주머니로 채우지 않으면 반값 규모의 지속적 감액은 불가능하다.

전국 사립대학의 총 재정 수익을 보자. 약 25조 원이다. 이 중 등록금 수익이 70% 이상을 차지한다. 나머지 재단과 대학 내 산학협력단, 벤처기업으로 버는 교육 외 수익이 있다지만 고작 4~8% 선이다. 세금으로 대주는 정부 지원도 고작 4%로 미국의 16%, 일본의 11.6%에 비하면 3~4배의 차이가 난다. 그러니 대학 교육의 질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교수 1인당 학생 수만 해도 한국은 37.8명이다. 일본(11명), 미국(15명)에 비해 질적으로 게임이 안 된다. 그 증거는 스위스 IMD의 국가 경쟁력 조사에서 드러난다. 대상 국가 55개국 중 한국의 교육 경쟁력은 35위, 대학 교육의 질적 수준은 53위였다. 꼴찌에서 셋째다.

이런 현상이 등록금 절반 깎아준다고 해결될 문제일 것인가. 선진국 수준으로 교수를 더 뽑으려면 지금의 7만 8천 명 교수들 평균 연봉 9천 500만 원을 기준할 때 현재 등록금 전액을 몽땅 인건비에 다 쓸어 넣는다 해도 모자란다. 홀대받고 있는 9만 5천 명의 시간강사까지 제대로 대우해 주려면 지금 등록금을 두세 배 정도 더 올려야 따라갈까 말까다. 그런 판에 반값으로 깎는다? 정상적인 뇌로는 계산이 안 된다. 국회의원 생각대로 반값만 깎는다고 해도 당장 해마다 약 12조 원 이상을 세금으로 쏟아부어야 한다. 2년마다 4대강 사업 한 번씩 할 수 있는 돈이다. 그 돈으로도 교수 확보율 등 교육의 질은 후진국 수준을 못 벗어난다. 학비만 생색 내 낮추고 교육은 계속 싸구려로 하겠단 거나 같다. 대학이 구조조정돼서 떠맡으면 되지 않느냐는 논리가 나오게 되지만 모든 대학 재단을 다 쥐어짜 봤자 2년도 못 버틴다. 적립금이라야 기백억에서 기천억 원이 고작이기 때문이다. 학교를 15% 없앤다 해도 지원해 줘야 할 학생은 100% 다 남는다.

결국 반값 등록금은 무슨 위원회 새로 만들고 법 고치고 학교 없앤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 국가 재정, 즉 나라를 살찌워야 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온 국민이, 기업이, 학교와 정부가 열심히 일하고 뭉쳐서 등록금을 지금보다 더 올려도 가처분소득이 남아돌고 학비지수가 엥겔지수보다 열 배쯤 낮아지는 부국을 만드는 길밖에 없다. 지금 이대로 정치권 싸우고, 공직자 부패하고, 노조 떠들고, 좌파 훼방 놓고, 전교조 삐딱하게 가르치고, 대기업 자식 유산 수천억 세금 없이 챙겨주는 뇌(의식)로서는 등록금 반값 어림없다. 공동체의 '뇌'부터 다 확 바꿔야만 해결된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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