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의 케네디 공항, 워싱턴 DC의 레이건 공항, 프랑스 드골 공항,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
해외에 출장을 갈 때면 자국을 대표하는 위인들의 이름을 딴 공항을 손쉽게 볼 수 있다. 공항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이들 공항의 명칭이고 이를 접하는 순간 '아! 이곳이 세계적인 명사의 고장이었구나' 하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된다. 항공편을 예약할 때부터 비행기가 내릴 때까지 공항 이름을 수차례 접하다 보면 이러한 이름들에 대해 더욱 친숙함을 느끼게 되고 위인들의 업적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유수한 공항들이 자국이 자랑하는 인물의 명칭을 붙이는 것은 자국을 대표하는 위인들의 이름을 사용해 이들의 업적과 치적을 기리는 한편 자국의 자부심을 한껏 높이고 대외적 홍보 효과를 노리기 위한 '네이밍 전략'의 하나다. 하루에도 수만 명이 국경선을 넘나드는 세계화 시대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생각을 바꾸게 하는 힘이 '네이밍'에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반면, 국내공항들의 이름은 천편일률적으로 공항이 위치한 지역명을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인천, 대구, 제주, 김해 공항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위인들의 이름을 사용하는 공항은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우리도 외국 못지않게 한국을 대표할 만한 위대한 인물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세종대왕이나 광개토대왕, 김유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한껏 드높인 역사적인 인물들을 가지고 있다.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지만 박정희 등 현대사에서도 훌륭한 업적을 남긴 분을 찾기가 어렵지 않다.
만약 이들 위인의 이름을 공항이름으로 선택한다면 그 지역의 이미지를 높이고 결과적으로 국가와 지역 모두의 경쟁력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인천공항을 세종공항으로 이름을 바꾼다면 인천은 세종대왕이라는 문화적 왕관을 쓰게 되는 셈이고 대구경북에 위치한 공항을 '박정희 공항'으로 이름을 붙인다면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고 새마을운동의 발상지이자 경제발전이라는 이미지를 덤으로 얻게 되는 셈이다.
동남권 신공항 유치를 둘러싸고 대구경북 등 4개 시도와 부산이 갈등을 빚을 때도 공항의 명칭이 논란거리가 된 적이 있다. 동남권 신공항 대신 영남권 신공항이라는 명칭을 사용해야 한다고 일부 정치인들이 주장하기도 했다.
때마침 최근 경북도의회를 중심으로, 재추진되는 동남권 신공항의 명칭을 박정희 공항으로 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신공항을 둘러싼 지역 간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는 동시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개발 업적을 기리고 지역의 자부심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흔적이 많이 배어 있는 영남권에 들어설 신공항을 '박정희 공항'으로 이름 붙인다면 지역의 이미지를 제고하고 나아가 관광자원으로까지 활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물론 여기에는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대권을 거머쥘 때를 대비, 이명박 정권처럼 '딴소리'를 하지 않도록 하자는 정치적 계산도 깔려 있다. 이미 황상조(경주), 박병훈(경주), 한혜련(영천), 황이주(울진), 배수향(김천), 홍진규(군위), 장세헌(포항) 등 상당수 의원이 이 같은 생각에 뜻을 같이하고 있다.
황상조 도의회 부의장의 말을 빌리면 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그 공과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가 있을 수 있지만 여론조사에서 아직도 상당수 국민이 존경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온 만큼 재추진되는 동남권 신공항의 이름을 박정희 공항으로 한다면 지역 간의 대립을 완화할 수 있고 대구경북의 정체성 확립과 문화관광 활성화라는 세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박정희 공항이라는 명칭에 대해 모든 지역이 수긍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그러나 신공항을 재추진하고 있는 이때 '어떻게 이름을 붙여야 공항이 활성화될 것인가'를 심각하게 생각해보는 것은 꼭 필요하지 않을까. 어떻게 이름 지어지고 불리느냐에 따라 그 대상의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의 시구처럼 말이다.
최창희(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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