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억을 들여다본다. 발자국이 지나간다. 인류의 먼 기억은 걸음, 즉 발자국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봉산문화회관 기획전시 '기억공작소- 예술, 미래를 기억하다' 전시로 임창민 계명대 미술대학 교수의 전시가 31일까지 열린다. 대구의 몇 안 되는 미디어영상작가인 임창민은 독특한 방식으로 이 공간에 대해 해석한다.
전시실 바닥에는 거울이 깔려 있다. 그 위로 길을 걷는 발바닥 자국을 담은 영상 '흔적-foot print'가 비친다. 이는 거울로 반사돼 6m 높이의 천장에 비친다. 천장에서 지나가는 발자국의 영상은 다시 거울에 비쳐, 마치 맑고 깊은 우물 속에서 영상이 흘러가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걸으면서 생기는 발바닥의 흔적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독특한 느낌을 전해준다. 일의 무게를 지고 보기 흉한 굳은살이 여기저기 박여 있고, 발가락의 뭉툭한 느낌은 그다지 경쾌하지 않다. 10여 명의 사람이 저마다 다른 보폭과 발걸음으로 지나가는 발바닥의 흔적은 7분 30초 동안 흘러간다.
영상이 반추되는 깊은 우물 같은 거울 앞에 쪼그리고 앉아 그 발바닥의 흔적과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치 오래된 기억 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느낌이다. 한편 '흔적-hand print'는 사라지는 흔적을 보여준다. 사람의 손바닥 표면을 복사기로 복사하고, 그 복사물을 다시 복사하기를 1천여 회 거듭한다. 그러면 애초에 선명한 손바닥 모양은 점차 알 수 없는 형상으로 일그러져, 1천 회에 가까워지면 물감의 흔적처럼 변한다. 이것은 우리의 기억과도 닮아있다. 객관적이고 사실에 근거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이처럼 왜곡의 과정을 거치는지도 모른다.
작가는 "흔적과 기억을 연관시켰고, 흔적은 곧 남는 것과 사라지는 것으로 나뉜다"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 축적되고 더해지는 흔적으로 '발자국'을, 사라지는 흔적으로 '손바닥'을 상징적으로 선보인 것이다. 053)661-3081.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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