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To see is to believe) 이 진술은 그 자체로 참인 듯하다. 과학자에게 실제 관찰은 과학적 진리에 이르는 필수적 과정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태양 표면을 지나는 별빛이 휘는 현상이 관찰되지 않았다면 여전히 가설로 남았을 것이다. 시각의 명징함에 대한 믿음은 판사가 유죄냐 무죄냐를 판단하는 데도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법정에서 목격자 증언은 압도적 우위의 증거능력을 갖는다.
과연 그럴까. 정말로 우리 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일까. 일리노이 대학의 대니얼 사이먼스 교수의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은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험은 간단하다. 검은 셔츠 팀과 흰 셔츠 팀이 분주히 농구공을 주고받는 동영상을 25초간 실험 대상자들에게 보여준 뒤 흰 셔츠 팀의 패스 횟수를 적어내는 것이다. 물론 패스 횟수를 적어내라는 지시는 동영상을 보여주기 전에 전달됐다. 실험이 끝난 뒤 실험자는 실험 대상자에게 난데없이 동영상에서 고릴라를 봤느냐고 묻는다. 실험 대상자는 황당한 표정이다. 웬 고릴라? 실험자는 이번에는 패스 횟수를 세지 말고 동영상을 그냥 보라고 한다. 놀랍게도 동영상 중간에 고릴라 의상을 입은 학생이 농구공을 주고받는 흑'백팀 사이로 태연하게 걸어들어와 카메라 앞에서 주먹으로 가슴을 치고는 유유히 걸어나가는 게 아닌가. 고릴라 출연 장면은 약 9초로 전체 영상의 3분의 1이 넘었다. 그렇지만 실험 대상자의 절반은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 이후 여러 나라가 다양한 조건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했으나 결과는 같았다. 50%는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
민주당이 추천한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발언이 국민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이라는 정부 발표를 믿지만 직접 보지 않아서 확신할 수는 없다"고 했다. 만약 조 후보자가 직접 봤다면 확신할 수 있을까. 고릴라 실험이 말해주듯 인간의 눈은 불완전하다. 보고도 못 보는 것이 숱하다. 고릴라 실험은 그가 천안함 침몰 현장을 봤어도 북한의 소행인지 아닌지는 여전히 모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조 후보자의 발언은 무엇보다 실현 불가능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억지다. 어떻게 한밤중에 영해 밖에 있는 북한 잠수정의 어뢰 발사 현장을 보며 어떻게 그 어뢰가 천안함을 두 동강 내는 장면을 본다는 것인가. 조 후보자의 논리대로라면 상대성 이론 같은 과학적 진리나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다는 역사적 사실도 '확신'할 수 없다. 지금 이 시점에 벌어지고 있지만 그의 시야 밖에 있는 온갖 일상사 역시 마찬가지다. 직접 보지 않고 경험하지 않았으니까.
이에 대해 진보를 표방하는 일부 신문은 조 후보자의 발언은 일부 의원들이 그에게 '확신한다'는 답을 강요해서 빚어진 결과라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지만 이 역시 말장난이다. 믿는 것은 무엇이며 확신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믿지만 확신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90%는 믿겠는데 10%는 못 믿겠다는 뜻인가. 과연 이런 믿음이 있을 수 있을까.
천안함 침몰 원인은 여전히 논쟁 중이다. 정부나 그 반대 측 모두 과학의 이름으로 자기주장을 펴지만 어느 쪽도 승리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양심 고백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현 단계에서는 정부 발표와 그 반론 모두 확실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정부 주장을 확신하지 못한다면 반대 측 주장도 확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조 후보자는 정부 발표를 확신하지 못하는 만큼 반대 측 주장도 확신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보지 않아서 확신할 수 없다'는 말은 그런 속마음을 은연중 드러낸 듯하다.
우리는 보지 않고도 증거와 증언, 논증 등을 통해 진실이나 사실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는 믿고 싶은 것만 믿거나 자기 믿음과 다른 정보는 외면하는 심리적 편향(偏向)들이 버티고 있다. 이를 넘으려면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육안(肉眼)이 멀쩡해도 심안(心眼)이 닫혔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조 후보자의 문제는 보지 않아서가 아니라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데에 있는 것 같다. 이는 북한을 무조건 두둔하는 종북주의자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鄭敬勳(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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